[FETV=권지현 기자] 국내 은행들이 두 달 연속 은행채의 순발행액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대출 우려에 따른 정부의 대출 규제와 기업들의 신규 투자기피로 은행의 예수금이 풍부해지면서 은행채를 발행할 유인이 감소한 영향으로 보인다.
2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5일까지 은행채 순발행액(발행액에서 상환액을 뺀 수치)은 4조59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채 순발행액은 지난 9월 9조8798억원에서 10월 6조9259억원으로 한달 만에 2조9539억원 줄어들더니, 이달에는 5조원을 밑돌게 됐다. 2개월 새 반토막이 난 것으로, 지난 9월 역으로 한 달 만에 3배가량 뛰었던 것을 감안하면 불과 3개월 새 달라진 풍경이다.
특히 25일 한때 순발행액이 7000억원 마이너스(-) 전환했는데, 일일 기준 상환액이 발행액을 웃돈 것은 지난 10월 21일 700억원 순상환 이후 약 1개월 만이다.
이 같은 은행채의 순발행액 감소는 시중은행들의 예수금 등 여유자금이 풍부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자금조달을 위해 굳이 은행채를 발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정부의 대출 규제와 기업들의 투자 비활성화로 은행들은 연초 대비 자금을 굴릴 유인이 줄어든 상황이다. 예수금이란 금융기관이 고객들에게 받은 일반 정기예금과 적금 등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할 수 있는 예금을 말한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우리나라 예금은행의 원화예금은 2070조8182억원으로, 올해 1월(1964조1884억원)보다 106조6298억원 급증했다. 특히 8월(2050조6005억원)과 견줘 한 달 만에 20조2177억원 불었다. 국내 은행 총예금은 2월 2000조원을 돌파한 이래 4월과 7월 하락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A은행 관계자는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고금리 잔존 효과로 예년보다 자금이 풍부해 굳이 은행채를 발행해가며 자금을 확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고환율이 지속되고 있지만 각 은행들이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기준인 97.5%를 넉넉히 웃돌고 있는 점도 은행채 발행 필요성을 줄이고 있다. 'LCR'은 향후 30일간 예상되는 순 현금 유출액 대비 고유동성 자산의 비율로, 은행의 대표적인 유동성 지표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파생거래 담보를 더 많이 부담하게 되고 외화예금이 감소하는 등의 경로로 LCR이 악화한다. 실제 은행들은 지난 2022년 환율이 급등하면서 LCR 관리가 이슈로 떠오르자 유동성 확보를 위해 은행채 발행을 쏟아낸 바 있다.
B은행 관계자는 "현재 대부분 은행이 LCR 100%를 상회하는 데다 환율 상승 폭이 2022년 때보단 크지 않아 LCR로 인한 추가 조달 이슈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다만 연말에는 은행 조달이 많은 시기인 만큼 현재와 같은 은행채 발행 추이가 이어질지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은행채 발행 축소에 따라 대출금리 상승 압력이 다소 낮아질지 주목된다. 은행채 금리는 대출금리를 결정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로, 은행채 금리가 높아지면 대출금리도 함께 오른다. 은행이 시장 불안에 따라 높은 금리로 은행채 발행을 쏟아내지 않으면 결국 대출금리 상승 압력도 잦아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