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신동현 기자] ‘한글’로 불리던 회사,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는 오랫동안 국민 문서도구의 상징이었다. 공공기관과 기업, 개인 사용자 모두에게 익숙했던 이름이지만 동시에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이미지도 함께 따라붙었다.
그런 한컴에 변화를 가져온 이는 김상철 회장이었다. 2010년 회사를 인수한 그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탈피해 종합 기술기업으로의 도약을 꿈꿨다.
김 회장은 오피스 소프트웨어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국내 자동차용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1위 기업인 MDS테크놀로지(2014), 모바일 포렌식 1위 기업 한컴GMD(2015), 개인안전장비 기업 산청(현 한컴라이프케어, 2017), 우주기술 기반의 인스페이스(2020)까지 잇따라 인수하며 외형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처럼 공격적인 인수합병 전략에 힘입어 사업 포트폴리오는 빠르게 다각화됐고 매출 규모는 10년 만에 약 10배 가량 성장했다. 그러나 빠른 외형 확장은 한계와 부담도 함께 떠안았다. 오피스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수익성이 흔들렸고 일부 인수 기업은 뚜렷한 시너지를 내지 못한 채 정리 수순을 밟게 됐다.
그런 흐름 속에서 2021년, 한컴은 중요한 변곡점을 맞이한다. 김 회장의 장녀이자 그룹 전략기획을 맡아온 김연수 대표가 각자대표로 선임된 것이다.
김 대표는 기존의 무한 확장 전략을 접고 ‘선택과 집중’ 전략을 선언했다. 아버지가 인수했던 굵직한 자회사들인 한컴MDS, 한컴로보틱스, 한컴인텔리전스 등을 매각하고 AI·클라우드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대수술에 나섰다.
그 결과 한컴은 ‘한컴독스 AI’, ‘한컴어시스턴트’, ‘웹기안기’ 등 생성형 AI 기반의 SaaS 제품군을 중심으로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SDK 공급, 온프레미스 환경 대응 등 기술 내재화와 산업별 맞춤형 전략도 동시에 추진됐다.
이 같은 체질 개선은 곧 실적 회복으로 이어졌다. 2023년 당기순손실 275억원을 기록했던 한컴은 2024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특히 SaaS 중심 문서 매출은 전년 대비 35% 이상 늘어나며 의미 있는 성장 흐름을 입증했다. 김상철 회장이 외형 확장으로 회사를 키웠다면 김연수 대표는 전략적 구조조정과 집중을 통해 회사의 정체성을 새롭게 쓰고 있는 셈이다.
올해는 그 변화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김 대표는 AI 사업 수익화를 위한 실질적 활동에도 직접 나섰다. 연내 300여 개 고객사를 직접 방문해 자사 AI 솔루션을 소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매일 현장을 찾아 영업에 나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는 성과 중심의 조직 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해 보수 체계도 바꿨다. 본인부터 기본급을 없애고 전적으로 성과에 기반한 성과급 체계를 적용했다. 분기별 성과 피드백 시스템, MVP 선정, 인센티브 강화 등 새로운 기준이 조직에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제 한컴은 더 이상 과거의 ‘문서도구’ 기업에 머무르지 않는다. 플랫폼 기술 기업, AI 솔루션 기업으로 한컴의 얼굴은 점점 바뀌고 있다. 미래에 ‘한컴오피스의 회사’에서 어떤 이미지로 기억될지, 그 변화의 끝은 어디를 향할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