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R&D는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척도다. R&D를 어떤 방식으로 설계하고 기술 자산을 구조화하는지가 전략 로드맵의 핵심이기도 하다. 연구개발비가 단순한 투자가 아닌 기업의 자산으로 자리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에 FETV는 R&D 전략과 자산 구조를 통해 각 사의 재무구조와 미래 경쟁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
[FETV=김주영 기자] 유한양행은 2015년 R&D 중심 경영으로 전환한 뒤 2020년 연구개발비 증액과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신약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냈다. 그 결과 혁신 신약 렉라자(YH25448)가 2024년 미국 FDA로부터 병용요법 승인을 받고 같은 해 3분기 미국 판매를 시작했다. 이를 재현하기 위한 R&D 투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한양행은 2015년부터 자체 혁신신약 개발을 목표로 전사 전략을 전환했다. 그전까지는 전통적인 의약품 유통과 제네릭(복제약) 생산이 주력이었지만 장기 성장을 위해선 신약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이 판단의 배경에는 렉라자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렉라자는 2015년 제노스코와 오스코텍으로부터 기술이전 받아 개발을 시작한 EGFR 변이 표적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초기 임상 단계부터 전략적으로 설계돼 유한양행이 직접 임상 1상을 수행했다.
이에 따라 연구개발비를 대폭 끌어올리고 연구 인력과 조직도 전면 재편했다. 2017년에는 연구개발(R&D) 본부를 신설하고 중앙연구소장도 새 인물로 교체해 연구 역량을 강화했다. R&D본부는 서상훈 부사장이 맡았고 글로벌 신약개발 경험이 풍부한 최순규 상무를 중앙연구소장으로 영입했다. 렉라자 임상 개발이 본격화된 시기와 맞물려 조직 강화가 추진된 셈이다.
이후 유한양행은 임상 1상 진행 단계에서 2018년 얀센 바이오테크에 전체 계약 규모 9억5000만 달러(약 1조3670억원)로 기술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계약은 계약금 5000만 달러, 임상 진행 및 허가, 판매 성과에 따라 지급되는 마일스톤, 그리고 판매에 따른 로열티 구조로 구성돼 있다.
![유한양행 R&D투자 및 기술수출 성과. [자료 유한양행 IR]](http://www.fetv.co.kr/data/photos/20250418/art_17458271067508_f4fded.png)
2018년 렉라자의 글로벌 기술수출 성공 이후 연구개발 투자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실제로 2019년 연구개발비는 1382억원으로 전년 대비 22.8% 증가했고 2020년에는 2226억원으로 한 해 만에 61% 급증했다. 같은 기간 연구개발비 매출 비율도 2018년 7.4%에서 2020년 13.7%로 뛰었다. 이는 렉라자 기술수출을 통해 연구개발의 경제적 성과를 체감한 결과로 해석된다.
조직 체계도 달라졌다. 2020년 R&D본부장이 김상철 전무로 교체됐고 중앙연구소장에는 오세웅 부사장(당시 전무)이 새롭게 발탁돼 연구개발 부문 리더십을 강화했다. 오 부사장은 합성신약부문장 출신으로 신약 후보물질 발굴 및 글로벌 임상에 강점을 가진 인물이다.
증가한 연구개발비와 변경된 조직을 바탕으로 유한양행은 별도로 레이저티닙(렉라자 단독) 요법으로 글로벌 3상 시험(LASER301)을 추진했다. 이 3상 시험은 미국, 유럽, 아시아 등 13개국에서 393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기존 치료제인 '게피티닙' 대비 무진행생존기간(PFS)을 두 배 이상 연장하는 성과를 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렉라자는 2021년 대한민국 제31호 신약으로 허가를 받았고 2023년에는 1차 치료제로 적응증을 확대했다. 2024년 1월부터는 보험 적용을 받아 환자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다. 같은 해 8월에는 얀센과 함께 개발한 병용요법으로 미국 FDA 시판 승인을 획득해 국산 항암신약 최초로 FDA 승인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렉라자의 상업화가 본격화되면서 개발비에 대한 상각도 시작됐다. 유한양행은 2024년 기준 렉라자 관련 개발비 1170억7875만8000원을 무형자산으로 인식했다. 전체 개발비 중 89%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중 약 8.3%에 해당하는 97억5652만4000원을 상각했다. 향후 11년동안 상각이 점진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렉라자로 이룬 혁신신약 개발에서의 성공으로 유한양행은 R&D 투자규모를 점차 늘려 2024년 2688억원에 달하는 연구개발비를 투자했다. 연구 인력 역시 빠르게 늘어 2024년 기준 447명까지 확대됐고 이 중 286명이 중앙연구소에 소속돼 핵심 파이프라인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제 2의 렉라자를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한양행은 렉라자 이후 가능성 있는 후보물질에 대한 연구를 지속한 후 글로벌 신약 기술수출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2019년 7월에는 베링거인겔하임에 NASH(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치료 후보물질을 8억7000만 달러 규모로 기술 수출했고 2020년 8월에는 미국 프로세사 파마슈티컬에 위장관운동촉진제 후보물질 YH12852를 4억1050만 달러 규모로 수출했다. 두 건을 포함해 유한양행의 기술수출 총 계약 규모는 24억4865만 달러(약 3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실제 수령한 계약금은 9265만 달러, 마일스톤 수익은 1억7200만 달러에 이른다.
내부 파이프라인 또한 꾸준히 연구 중이다. 유한양행은 현재 고형암 치료제 YH32367, 퇴행성 디스크질환 치료제 YH14618,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NASH) 치료제, 면역항암제 등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있다. 고형암 신약 YH32367은 특이한 분자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기존 표적항암제와 차별화된 치료 효과를 기대하고 있으며 YH14618은 척추 퇴행성 디스크 질환을 표적하는 혁신적 바이오 신약으로 개발이 한창이다.
이와 함께 오픈이노베이션 전략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외부 바이오벤처와의 공동 연구개발, 신약 후보물질 도입 등을 통해 R&D 파이프라인을 보강하고 있으며 글로벌 임상 운영 역량과 해외 네트워크도 지속 확대하고 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렉라자가 현재까지 유일한 글로벌 혁신신약이지만 앞으로는 다수의 혁신 파이프라인을 확보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R&D 역량 고도화와 추가적인 해외 라이선스 아웃을 통해 미래 성장 기반을 더욱 공고히 다져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