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1997년 대학생 때 와보고 처음인데 그새 새 건물로 바뀌었고 전시 유물 수도 많아졌네요. 함께 온 아이에게도 옛날 통장, 돈을 보여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울 광화문역 6번 출구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자리한 건물. 옛 건축 양식인 듯 현대식인 듯한 박물관 외관이 눈길을 끈다. 초등생 아들과 함께 전시를 찾은 관람객과 대화를 나누다 1997년에 방문한 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학예사에게 바로 확인해 보았다. "97년도에도 문을 열었나요?" "그 해가 전시를 시작한 첫 해에요" 신한은행이 27년 전 국내 처음으로 선보인 '한국금융사박물관' 이야기다. 1년간 새 단장을 거쳐 지난 2022년 7월 금융사 박물관 문을 다시 연 신한은행이 이번에는 '내 통장의 기록' 특별기획전을 개최한다.
◇"가장 친환경적인 게 가장 경제적인 거죠"
지난 13일 기자가 느낀 특별전에 대한 총평은 '작은 공간에 꽉 채워넣은 통장의 모든 것'. 이달 11일부터 시작된 이번 기획전은 ▲통장, 개인의 소유가 되다 ▲통장, 숫자가 늘어나다 ▲통장, 내 손안에 들어오다 3개 부문으로 구성됐다. 박물관이 소장 중인 통장 유물 40여점을 활용해 통장의 역사적 배경과 다양한 형태, 종이통장에서 전자통장으로 변화하는 과정 등을 소개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오미희 한국금융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특별전을 통해 통장이 발전 단계를 거쳐 결국은 전자통장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했다"면서 "가장 친환경적인 게 가장 경제적이라는 관점에서, '돈'과 '삶'이 연결돼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금융사 박물관의 전시 섹션이 주로 아이들에게 초점을 뒀다면, 이번 특별전은 성인 관람객도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옛 통장이라고 해서 고리타분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80~90년대 출시된 '립스틱통장' '효도통장' '신세대우대통장' '공모주예금통장' 등 타깃을 정확히 설정한 통장들은 지금봐도 세련됐다. 기자가 '본능적으로' 집어든 립스틱통장은 우대사항에 ▲예금거래 실적에 따라 화장품 선물 ▲통장에 가계부란(欄) 탑재 ▲립스틱카드 발급자는 화장품 구입 시 할인 혜택 등이 적혀있었다. 효도통장은 500만원 이상 정기예금 가입자에게 연 1회 무료 건강검진 혜택을 50세 이상 부모 외 '친지'에게도 제공했는데, 이 혜택은 지금 생각해도 파격적이다. 특별기획전은 내년 10월 31일까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유네스코 기록유산을 은행 박물관에서...상평통보도 살펴보세요"
한국금융사박물관은 신한은행 광화문점 건물 3~4층에 위치한다. 건물 외형은 1897년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은행 한성은행의 모습을 본떴다. '한국금융역사관 3층'은 전통시대1(고대~조선 전기), 전통시대2(조선 후기~개항 이전), 근대기~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로 구성했으며, '금융생활체험관 4층'은 한국금융 발전사, 금융생활 시간여행, 기획전시, 보이는 수장고로 조성했다. 금융사박물관은 신한은행이 보유한 약 6600점의 유물 중 600점을 전시하고 있다.
'학예사 픽' 유물은 무엇일까. 국채보상운동 관련 유물이라는 답변이 바로 나왔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2월 대구에서 발단된 주권수호운동으로,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300만원을 갚아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벌인 경제 자립 운동이다. 금융사박물관이 보유한 국채보상운동 유물들은 그 의의를 인정받아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상평통보'도 금융사박물관의 자랑이다. 통상 동전과 금속 전시물의 경우 단면만 전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관람객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상평통보 앞뒤 양면을 전시하기로 했다. 1633년 최초 유통된 상평통보는 1678년 이후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 유통돼 조선 말기 현대식 화폐가 나올 때까지 통용됐다.
외국인 친구와 방문한 관람객은 "친구에게 좋은 추억을 주고 싶어서 광화문에 왔다가 건물 외관에 끌려 호기심에 들어왔는데, 예상치 못하게 너무 흥미로운 전시를 보게 됐다"면서 "외국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영어 설명을 달아놓은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3층을 지나 4층에 올라서면 이전과 확 달라진 분위기에 다시 관람 의지가 솟는다. 신한은행은 한국금융사박물관을 재개관하며 은행 태동기인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제대로 구현해냈다. 예전 행원들이 지점에서 입던 동복과 하복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옷감 재질까지 신경썼다는 후문이다. 현금입출금기(ATM) 전신인 야간금고와 동전교환 카트기, 신한은행의 국내 첫 바로바로코너 등은 어른들에게 추억을, 통장과 카드, 수표와 주권 등은 좀처럼 은행에 갈 일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새로움을 준다.
한국금융사박물관은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오후 5시 입장 마감)까지 문을 연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