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지난해 건별로 수백억원에 달하는 금융사고가 잇달아 발생해 금융사 '신뢰 훼손' 우려가 짙어진 가운데, 국내 대형 금융지주 이사회에서 '횡령'을 언급하며 내부통제 허점을 비판하거나 자성하는 목소리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내 경영진을 감시·견제하라고 둔 사외이사들은 작년 한 해 수십 차례 열린 이사회·위원회에서 회당 백만원단위 보수를 받으면서도 금융사고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15일 FETV가 분석한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 '2023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지주 한 곳당 최대 400 페이지가 넘는 보고서에서 횡령 관련 언급은 '두 번' 뿐이었다.
신한금융은 이사 11명이 작년 8월 10일 열린 제3회 정기이사회의 '그룹 준법감시인 상반기 내부통제 활동' 안건에 대해 "최근 금융기관의 횡령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횡령 사고 예방 활동에 더욱 힘써 줄 것을 주문했다"고 기록했다. 이날 이사회에는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과 정상혁 신한은행장, 9명의 사외이사가 모두 참석했다.
농협금융은 같은 해 1월 제1차 감사위원회 안건인 '2022년도 농협금융 금융사고 발생현황'에 대해 감사위원회 위원인 남병호·이순호·하경자 사외이사들이 "사고 재발방지 방안 등에 대한 질의 후 타 은행의 거액 횡령 사태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사고예방을 위해 경각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금융지주는 이사회 내 감사위원회가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경영감사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반면 KB·하나·우리금융 3곳에서는 사외이사들이 횡령 관련 언급을 한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KB금융은 현재 작년 3월 사외이사로 선임된 조화준 이사가 감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리스크관리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이사별 활동내역'을 보면 그는 11번 참석한 이사회는 물론 수차례 열린 위원회에서 '특이의견 없음'으로 적시, 횡령 또는 금융사고 관련 목소리를 단 한 번도 내지 않았다.
특히 작년 9월 열린 제8차 감사위원회는 KB국민은행·KB증권·KB손해보험·KB국민카드·KB라이프생명·KB자산운용 등 6개사의 금융사고 발생현황이 보고(심의)안건으로 올라왔지만, 조화준·김경호·권선주·김성용 4명의 감사위원들은 '활동내역'이 전무했다. 당시는 국민은행 직원·가족들이 주식 관련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총 127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사고가 터진 후였다.
하나금융도 횡령 관련 언급을 통해 내부통제 자성, 개선 목소리를 낸 사외이사가 한 명도 없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에서 2019년 1월부터 2023년 9월 사이에 발생한 횡령 사건은 모두 63건(764억원)으로, 하나은행(19건)이 가장 많았다.
하나금융 감사위원인 양동훈·백태승·이정원·박동문 사외이사는 지난해 9월 2023년 상반기 계열사 금융사고 보고를 받으면서도 '특이의견'을 내지 않았다. 당시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횡령 등 은행권에서 잇달아 적발되는 사고에 대해 "법령상 허용 가능한 최고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하고 한 달 뒤 열린 감사위원회였다.
우리금융 사외이사들도 이사회, 위원회에서 횡령과 관련해 직접적인 언급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2022년 터진 금융사고로 인해 우리은행이 BNK경남은행(2899억원)에 이어 '은행권 횡령액(707억원) 2위' 오명을 썼지만, 이 사안에 대해 제대로 질의하거나 횡령 재발방지를 주문한 목소리는 없었다.
우리금융 보고서 '이사회 등의 내부통제 활동 내역'에는 이사회가 경영진에게 내부통제 개선계획의 제출을 요구하거나 승인한 내역, 내부통제 취약에 책임이 있는 임직원에 대해 대표이사에게 징계조치를 요구한 내역 모두 '해당사항 없음'으로 표시돼 있다.
대형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의 이 같은 모습은 금융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내부통제 강화에 각고의 노력을 주문한 금융당국의 모습과 거리가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해 8월, "앞으로 내부통제 검사를 철저히 하고 조사를 철저히 하는 한편, 지금 이 시점에 모두 발본색원해서 걷어낸 다음에 새로 운영과 관행들을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편 지난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 사외이사들이 받은 평균 보수는 연 7639억원으로 집계됐다. 4곳에서 연간 이사회가 평균 13.5번 열렸으니, 회의 한 번에 566만원을 받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