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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인플레 둔화 전망에도 '천정부지' 환율, 왜

13년여 만에 1340원 육박...미 CPI 둔화에도 Fed '추가 금리인상' 예고
강달러 견제할 유럽·중국 경기둔화 영향도...당분간 달러 강세 지속 전망

 

[FETV=권지현 기자] 미국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정점에 도달했다는 관측에도 미 달러화가 초강세를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이 또 다시 연고점을 경신했다.

 

미국이 연일 긴축 신호를 보내는 데다 유럽을 중심으로 주요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점이 초강달러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3.9원 오른 1339.8원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달 15일 기록한 연고점(1326.1원)을 한 달여 만에 갈아치운 것으로, 22일 장중에선 오후 1시 한때 134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22일 장 마감 기준과 장중 기준 모두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4월 29일(고가 기준 1357.5원) 이후 약 13년 4개월 만의 최고치다. 23일 오전 9시 현재 원·달러 환율은 1341원을 돌파했다. 

 

이번 환율 기록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둔화 조짐 속 나온 현상이라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앞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연일 급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난 6월과 7월 두 달 연속 한 번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p)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6월 자이언트 스텝은 연준이 28년 만에 보인 행보다. 이 영향 등으로 6월 9.1%까지 치솟은 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7월 8.5%로 이전에 비해 오름세가 한풀 꺾였다.

 

환율 급등은 미 인플레이션이 8%대로 내려갔지만, 연준이 최근 '물가 안정세까지는 아직 멀었으며, 추가적인 자이언트 스텝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 영향이 크다.

 

특히 오는 26일(현지시간) 잭슨홀 회의를 앞두고 시장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매파적으로 나올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파월 의장은 이날 회의에서 '경제 전망'을 주제로 연설할 예정인데, 9월 20~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나와 어느 때보다 시장의 관심이 크다.

 

앞서 연준이 이달 17일 공개한 7월 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기준금리가 충분히 제약적인 수준에 도달한다면, 물가상승률이 2%로 확실히 되돌아오는 경로에 접어들 때까지 당분간 그 정도의 금리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고금리 지속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플레이션이 2%대에 접어들 때까지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얘기다. 9월 FOMC가 금리를 0.25%p 올릴 것이란 올 초 전망에서 대폭 확대된 수준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미국이 인플레이션 둔화에도 긴축 고삐를 계속 쥐고 있어 이른바 잭슨홀 피벗(태세 변환)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이라며 "미 경기 지표가 연속적인 안정세를 보이지 않는 이상 연준이 긴축 기조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유럽 경기 침체도 달러 초강세를 키웠다. 유로·달러 환율이 패리티(parity·1대1 교환) 수준에서 등락을 반복하는 가운데, 최근 유로화 약세가 강달러로 이어져 원·달러 환율의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지금의 강달러 현상이 '표면적으론 유럽발(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23일 오전 현재 유로·달러 환율은 0.994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유럽 경기 침체 배경에는 '천연가스 위협'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치솟은 천연가스 가격이 유럽경기를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다. 천연가스 가격은 22일 유로존에서 하루 만에 5% 이상 급등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달러 강세 일변도의 장세가 벌어지고 있는데,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은 땔감과 식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정도로 경기가 좋지 않다"며 "우리나라가 유럽 익스포저(위험 노출액)가 큰 국가인 만큼 국내 자산시장 침체에 대한 우려가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7월 소비자물가는 전력 비용이 크게 늘어난 탓에 한 달 전보다 10.1% 급등했다. 유로존 주요 7개국 가운데 유일한 두 자릿수 상승세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전날 중국이 7개월 만에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전월보다 0.05%p 낮췄는데, 이는 시장 전망치보다 높은 수준이어서 '중국도 침체 국면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이번주 잭슨홀 회의에 최근 유럽, 중국 경기 침체 관측마저 겹치면서 연내 혹은 내년 초까지 '환율 안정' 밑그림을 그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