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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리뷰]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자본시장 개척 숨은 코드 ‘휴머니즘’

10년간 250억원 기부…미래에셋박현주재단 통해 '인재육성' 실천
디지털 등 4대 혁신 전략 추진 통해 '차세대금융플랫폼' 구축 도전

 

[FETV=이가람 기자]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이 계속되고 있다.

 

박 회장은 10년 동안 보유 주식의 배당금 전액을 장학생 육성 및 사회 복지 사업에 기부해 왔다. 올해에도 미래에셋자산운용 배당금 16억원과 미래에셋캐피탈 배당금 1억원을 합산한 17억원을 기부했다. 지금까지 약 250억원을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박 회장은 자서전에서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꽃이 진 뒤 씨앗을 만들고 다시 수많은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돈도 꽃처럼 돌고 돌아 씨를 만들고 열매를 맺어 이 땅의 젊은이들과 건강한 사회를 위해 아름다운 꽃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이 사람을 키우는 영양분이 되어야 한다는 박 회장의 ‘인재 중심’ 가치관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박 회장은 1958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제일고를 졸업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부터 자본시장에 관심을 두게 된 박 회장은 투자자문회사를 차려 운영하다가 1986년 동양증권에 입사했다. 석 달 만에 대리로 승진하는 기록을 세운 뒤 1991년 동원증권으로 둥지를 옮기고 동원증권 중앙지점 지점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박 회장의 나이는 32살로 당시 국내 최연소 증권사 지점장이었다. 박 회장은 담당 지점을 전국 1위 점포로 만들었다. 기세를 몰아 압구정지점장과 강남본부장을 역임하며 ‘샐러리맨 신화’를 썼다.

 

박 회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구재상 압구정지점장, 최현만 서초지점장 등 8명의 ‘박현주 사단’과 함께 1997년 미래에셋벤처캐피탈과 미래에셋투자자문을 설립했다. 1999년에는 미래에셋증권을 세웠다. 2016년 2조4000억원대의 인수가를 제출해 대우증권과 합병에 성공하게 되면서 ‘업계 1위’로 도약했다.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해 사업 영역을 지속적으로 넓히던 박 회장은 국내 최초로 해외 펀드 사업에 진출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무한한 투자 기회를 확인하게 된 박 회장은 이렇다 할 자원이 없는 한국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게 됐다. 박 회장은 이러한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지난 2000년 3월 사재 75억원을 출자해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을 통해 시작된 미래에셋의 인재 육성 사업은 크게 ‘장학사업’과 ‘경제교육’으로 나뉜다. 

 

먼저 장학 사업은 국내 최대 규모의 장학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년 700명의 대학생을 선발해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는 이 제도를 통해 국내장학생, 해외교환장학생, 글로벌투자전문가장학생 등 1만여명의 학생들이 경제적 부담을 내려놓고 전 세계 50개국으로 파견돼 지식 함양 및 문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교육부와 교육 기부 협약을 체결, 금융투자업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인재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경제 교육 역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 아이 스쿨 투어’와 ‘우리 아이 경제 교실’ 등이 재단이 펼치는 대표적 교육 사업이다. 이 프로그램은 참가 인원만 30만명에 달한다. 

 

박 회장의 인재 사랑은 코로나19 국난에도 돋보였다. 코로나19 사태 심화로 세계 경제 활동이 멈추고 국가 성장률이 주저앉는 상황에서도 일방적인 구조조정은 없다며 직원들을 안심시켰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면서 실업자들이 다시 취업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실직을 면한 직장인들도 인사 고과 등에 따른 불안감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큰 위안을 건넸다는 평가다. 

 

박 회장은 그동안 인위적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았다. 대우증권을 인수했을 때에도 금융투자업계의 예상과 달리 구조조정을 시행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구조조정을 할 생각이 없었다고 발언한 것은 업계 내에서 유명한 사건이다. 

 

박 회장은 이렇게 지켜낸 인재들과 함께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섰다. 올 하반기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더불어 글로벌, 투자전문, 디지털, 연금을 미래에셋의 4대 혁신 전략으로 발표하고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래에셋은 지난해 글로벌 부문에서 준수한 실적을 기록했다. 미래에셋의 해외 법인은 지난해 대비 100% 넘게 증가한 1709억원의 순이익을 벌어들였다. 올 1분기에도 442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박 회장은 글로벌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 현지 법인 및 사무소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해외 우량 부동산을 발굴하고 성장 가능성이 엿보이는 사업에 투자하는 등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자산관리(WM) 부문에서는 연금과 해외주식을 통해 수익률 제고에 나섰다. 다양한 특화 상품의 출시해 투자자의 선택 폭을 넓히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디지털’ 분야 강화에 전사적 역량을 투입했다. 네이버파이낸셜과 협력 관계를 맺고 디지털 금융의 선두주자로 활약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미래에셋의 금융 노하우와 네이버의 정보통신(IT) 기술이 결합된 네이버통장이 호평을 받았다. 일부 핵심 업무를 위탁하는 디지털 금융 비즈니스 추진, 금융 분야와 관련한 인공지능(AI) 연구, 국내외 첨단 스타트업 발굴 등도 공동 진행한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과 네이버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를 통해 단순 금융투자회사를 뛰어넘어 ‘차세대금융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자수성가형 전략가로서 배려 있는 자본주의를 실현하며 ‘자본 시장의 개척자’로 불리는 박 회장의 목표가 이뤄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프로필
▲1958년 광주 출생 ▲1983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86년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 입사 ▲1991년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 중앙지점 지점장 ▲1996년 동원증권 강남본부장 이사 ▲1997년 미래에셋캐피탈 설립 ▲1999년 미래에셋증권 설립 ▲2000년 미래에셋박현주재단 설립 ▲2001년 미래에셋그룹 회장 취임 ▲2018년 미래에셋그룹 글로벌 경영전략고문(GI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