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나연지 기자] 삼성전자가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또다시 입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HBM3E 12단 제품이 엔비디아 퀄리피케이션(품질 인증)을 통과했다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실제 공급 물량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한발 앞서 HBM4 양산 체제를 공식화한 SK하이닉스와의 격차가 더욱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최근 HBM3E 12단 제품의 주요 고객사 인증 절차를 완료했다는 소식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엔비디아 물량 배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안팎에 머물 것이란 관측이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퀄리피케이션은 확보했지만, 공급망 주도권은 이미 SK하이닉스가 선점한 상태”라며 “삼성이 가져갈 수 있는 물량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퀄리피케이션은 뚫었으나 물량은 한 자릿수에 그칠 것”이라는 기류가 형성돼 있다는 전언이다. 즉, 기술적 진입 장벽은 넘었지만, 실제 양산 수율과 안정성 확보, 그리고 고객사의 초기 물량 배정에서는 SK하이닉스에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SK하이닉스는 지난 9월 세계 최초로 HBM4 개발을 완료하고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내부 인증까지 마친 만큼 엔비디아 차세대 GPU ‘루빈(Rubin)’의 초기 물량을 사실상 독점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가 공개한 HBM4는 12단 적층 구조를 기반으로 동작 속도 10Gbps 이상을 구현했다. 기존 대비 대역폭은 두 배 이상 확대됐고, 전력 효율도 40% 이상 개선됐다.
실적도 이를 뒷받침한다.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매출 22조2320억원, 영업이익 9조2129억원을 기록했는데, HBM이 매출의 40% 중반,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전문가들은 HBM4 초기 물량 배정에서 삼성전자가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루빈 GPU 검증 과정에서 우선 공급 지위를 확보한 반면, 삼성은 PVR(제품 검증) 단계를 통과했다는 보도만 나왔을 뿐, 실제 양산 수율과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공식 발표는 없다.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HBM4 동작 속도는 최소 9Gbps 이상, 실질적으로는 10Gbps 이상이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잡은 상태다. SK하이닉스는 해당 사양을 충족한 반면, 삼성은 인증 통과 보도 이후 추가 성능 수치나 물량 배정 관련 구체 정보는 전무하다.
결국 HBM 시장의 판도는 양산 수율과 초기 물량 배정에서 갈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기술과 공급망 모두에서 앞서가며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고, 삼성은 제한적 물량으로 ‘존재감’을 증명하는 국면이다.
SK하이닉스는 대외 협력에서도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SK그룹은 10월 1일 서울 서린빌딩에서 OpenAI와 메모리 공급 의향서(LOI) 및 서남권 AI 데이터센터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최태원 회장과 샘 올트먼 OpenAI CEO가 직접 참석한 이번 자리에서 SK하이닉스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HBM 공급 파트너로 참여를 공식화했다. SK하이닉스는 웨이퍼 기준 월 최대 90만장 규모의 생산 체제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으며, 이는 현재 전세계 HBM 생산 능력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HBM3E 시장은 이미 SK하이닉스가 사실상 장악한 상황”이라며 “삼성은 HBM4에서 성과를 내야 의미 있는 반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