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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부가 '취약계층'에 은행이자 4배 받는 시대

 

1. 성경 구약에 '희년(禧年)'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50년마다 돌아오는 거룩한 해'로 정의된다. 희년이 되면 이웃들의 빚을 탕감해 주고, 노예는 해방한 뒤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희년 덕분에 누구나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빚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기회를 얻었다. 빈(貧)이 어쩌면 부(富)로 바뀔 수도 있다는 실질적인 기대를 담아.  

 

2. 소액생계비대출은 정부가 취약계층(신용평점 하위 20%·연 소득 3500만원 이하)의 급전 수요를 지원하기 위해 서민금융진흥원을 통해 1인당 50만~100만원을 빌려주는 정책 금융 상품이다. 작년 3월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금융위원회는 "평생에 단 한 번"이라던 엄포를 깨고 지난달 소액생계비대출 전액 상환자에 한해 "횟수 무제한"이라며 재대출을 허했다.   

 

1번과 2번을 번갈아 생각하다 문득 떠올랐다, '대출금리의 빈익빈 부익부'. 

 

금융위는 "소액생계비대출 기본금리는 연 15.9%이지만 이자를 6개월간 성실하게 갚으면 재대출 금리는 9.4%로 낮아진다"고 했다. 바꿔말하면 대출 기간 6개월 중 한 번이라도 연체를 하면 재대출 시 연 15.9% 이자를 적용받는다는 뜻이다. 15.9%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금리의 4배가 넘는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이 지난 8월 신규취급한 가계대출 평균금리는 3.9%다. 

 

정부가 대부업체나 적용하는 법정최고금리(20%)에 육박하는 16%가량을 기본금리로 설정하면서 가장 낮은 수준을 적용해도 역시나 고금리인 9%가 넘는 이자를 받는 이 시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부는 알고 있다. 소액생계비대출 차주들은 겨우 상환을 해 재대출에 성공한다해도 생각보다 높은 비중으로 최저 금리인 9.4%를 적용받지 못해 '15.9% 굴레'에 갇힐 확률이 높다. 지난 5월까지의 통계를 보면 소액생계비대출은 상대적으로 소액인 50만원을 대출받은 사람이 79.9%였는데, 연체율은 20.8%에 달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도 이에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소액생계비대출 연체율이 지속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정부는 애초 목적을 상기해야 한다. 소액생계비대출 대상은 고금리 속 불법 사채 문턱까지 간 취약계층이며, 용도는 이름 그대로 생계비다. 정부가 은행보다 많은 돈을 벌 목적이었다면 소액생계비대출을 시작해서는 안됐다. 은행보다 많은 돈을 벌 목적이 아니었다면 은행 금리의 4배가 넘는 이자를 받아서는 안됐다. 

 

김 부위원장 지난 6월 소액생계비대출 1주년 간담회에서 "불평등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바탕으로 서민금융정책이 금융의 포용성을 제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형 뉘앙스니 두고 볼 일이다. 취약계층은 희년까지는 바라지 않을 터다. 불평등에 대한 정부의 진정성 있는 자세면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