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서울 중구 신당동에 거주하는 70대 김호감씨는 손주에게 줄 현금이 필요해 평소 자주 지나던 미용실 옆 ATM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ATM기 대신 붕어빵 가게가 자리잡고 있었다. 근처 김밥집 옆에 있던 ATM도 1년 전에 없어진 것이 기억난 김 씨는 하는 수 없이 아픈 다리를 이끌고 10여 분 떨어진 은행 영업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은행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퇴근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물건을 사러 가는 길 등 어느 때나 구태여 찾지 않아도 쉽게 보이던 ATM을 이제는 애써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ATM과 달리 출금만 가능한 CD(현금자동지급기)의 경우 현재 추세로라면 향후 2~3년 내에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전국 ATM기 대수는 1만6052대로 나타났다. 2020년 3월 말까지만 해도 2만대를 웃돌았던 ATM 수는 2021년 3월 말 처음으로 2만대를 밑돌더니 약 3년 만에 1만6000대로 내려앉았다. 5년 전인 2018년 말(2만2570대)보다는 6518대 줄어들었다. 하루 3.6대씩 사라진 셈이다.
ATM 수가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국민은행이다. 국민은행이 은행 4곳 중 가장 많은 ATM을 보유했던 것과 무관치 않다. 국민은행의 작년 말 ATM 수는 4329대로 5년 전(7185대)보다 2856대 감소했다. 우리은행은 5424대에서 3742대로 5년새 1682대 줄었으며, 같은 기간 신한은행(5856→4558대)과 하나은행(4105→3423대)은 각각 1298대, 682대 감소했다.
하루에 4대가량 ATM이 사라진 배경에는 비용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ATM 1대당 구입비용은 1000만원, 운영비용은 매월 100만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디지털·비대면 금융서비스 확대로 은행 영업점도 통·폐합하는 상황에서 이용률이 갈수록 크게 줄고 있는 ATM을 운영하는 것이 은행으로서는 부담인 것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CD 공동망'을 통한 계좌이체와 현금인출 등의 금액은 올 1월 14조8485억으로, 2005년 2월(14조5316억원)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용 건수도 2545만2300건에 그쳐, 작년 2월(2515만1100건) 한 달을 제외하면 2000년 1월(2520만400건) 이후 24년 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한은이 제공하는 CD 공동망 결제 통계에는 CD뿐 아니라 시중은행이 운영하는 ATM도 모두 포함된다.
A은행 관계자는 "ATM의 경우 영업점 감소 등으로 비용은 많이 들지만 수익성이 낮아 최근 줄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은행들이 기기 운영비용을 절감해 소비자에게 득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만큼 ATM 감소 추세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기기 감소에 따른 고객 불편은 편의점이 채우고 있다. GS25는 가장 많은 'ATM 설치 점포'를 보유하고 있는데, 2020년 1만1600곳에서 작년 말 1만3500곳을 넘어섰다. 현재 GS25의 경우 국민·신한·우리은행 고객은 편의점 ATM기를 사용하더라도 수수료가 없다.
이웃나라 일본은 어떨까. 일본 금융사들도 코로나19 이후 비현금 결제비중이 늘고 ATM 비용 부담이 뒤따르자, 대형은행들을 중심으로 ATM 수를 줄이고 있다. 일본 ATM 한 대당 운영비용은 상각비를 포함해 연간 약 2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도시은행의 ATM 설치대수는 2014년 3월 말 2만7057대로 정점을 찍은 후 작년 말 1만8000대가량으로 감소했다.
다만 지점 ATM과 편의점 ATM이 아닌, '점포외(무인거점)' ATM에 힘을 싣고 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지점, 편의점 ATM 이용수수료를 올려 자연스럽게 점포외 ATM 이용을 유도해 지점·편의점 ATM 운영비용을 줄이는 방식이다. 점포외 ATM은 은행간 공동운영으로 비용을 절감한다. 일본 대형은행인 미츠비시UFJ은행과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점포외 ATM 이용수수료를 상호 무료화하며 공동운영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