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주부, 회사원, 소상공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 은행들은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사진 연합뉴스] ](http://www.fetv.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9860140477_cb3b3a.jpg)
[FETV=권지현 기자] "국제적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수익을 올리려는 투자가에게 자본시장을 적대시하는 정치 자세는 설령 그것이 오해라 해도 일본이라는 나라에 투자하는 데 부담해야 하는 리스크로 비칠 것이고, 필연적으로 '일본 패싱'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일본 미즈호 은행 수석 시장·이코노미스트인 가라카마 다이스케는 그의 저서 '엔화의 미래'에서 지난 2022년 3월 이후 기세가 오른 엔저(엔화 가치 하락) 현상을 이런 맥락 속에서 해석했다. 정치인들의 자본시장 관련 부정적인 발언이나 태도가 투자 리스크로 작용, 시장 참여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단 얘기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은행권을 향한 대통령과 정치권, 금융당국의 압박이 이어지면서 국내 증시 큰손인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하고 있다. 은행들이 올해 3분기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보였고 예년보다 확대된 주주환원에 연말 배당도 기대되는 상황이지만 외국인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 은행, 돈 잘 벌었는데...정치권 압박에 외국인 "팔자"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8개 은행주 가운데 5종목을 순매도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외국인 투자비중 70% 이상으로 국내 은행 대장주인 KB금융 주식을 1261억원 이상 시장에 내다 팔았다. 같은 기간 기업은행(232.6억원), BNK금융지주(146.6억원), DGB금융지주(8.4억원) 주식도 처분했으며, 외국인 비중 60%가 넘는 신한지주도 주식 31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외국인 매도세를 피해간 은행주의 경우 개인들이 물량을 팔아치웠다. 우리금융지주는 한달 새 개인 투자자들이 601억원 이상 주식을 내놓았으며, 신한지주(397.2억원)와 JB금융지주(95.5억원)도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처분했다. 연말 배당 효과로 은행주가 강세를 보이는 '찬 바람 불 땐 은행주'라는 말이 무색해진 것이다.
금융당국과 정부의 잇단 지적에 금융지주가 상생금융으로 적극 선회, 이전 만큼의 배당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 달 전께인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께서는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 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야당은 금융사가 직전 5개년 평균 순이자수익의 120%를 초과하는 순이자수익을 얻을 경우 초과 이익의 40% 이내를 회수하는 '횡재세' 법안을 발의했으며,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0일 금융지주 회장들과 만나 "은행권은 역대급 이익이 지속되는 상황인데 은행들의 이자 수익 증대는 결국 국민 부담 증대를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 "은행주 횡보 지속" vs "지금이 매수 적기"
여야, 당국의 연이은 강공에 은행들이 어떤 형태로든 초과 이익을 상생금융 기여금으로 내놓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은행들의 호실적은 이후로도 주식시장에서 '은행주를 팔아야 할 신호'로 읽힐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은행주는 소폭이지만 전주에도 초과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고, 외국인들의 은행주 순매수 규모는 여전히 미미한 상황"이라며 "금융당국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을 최대한 낮출 수 있는 직접적인 방안을 찾으라며 은행권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등을 이끌만한 모멘텀 또한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당분간 은행주는 횡보 양상을 보일 공산이 크다"면서 "조만간 은행들이 배당 선진화 방안 실시 여부를 공시할텐데 관련 뉴스에 따라서 단기 등락을 보일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은행주가 힘을 받지 못하는 이 때가 오히려 매수 기회라는 의견도 있다. 최근 상생금융 이슈로 인해 은행업 투자심리가 좋지 않지만, '이 또한 지나가기에' 저평가, 하락세에 접어든 지금이 매수 적기라는 뜻이다.
박용대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비우호적인 여론, 규제 리스크가 은행·금융지주들을 계속해서 불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내년 선거 이후에는 비난 여론이 일부 완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록 은행권 경쟁 촉진, 사회공헌 확대 등의 규제 리스크는 금융 당국의 주요 과제이기 때문에 지속되겠지만, 이로 인해 단기적으로 은행·금융지주들이 체감할 정도의(혹은 상당한 규모의) 이익 훼손을 경험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