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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으로 말해요" 수학도, 금융권서 '잘나가네'

은행·보험·증권사 등서 CEO 선임·승진 잇따라
융·복합 금융시대 맞아 수요 증가로 '프리미엄'

 

[FETV=권지현 기자] 미국 유명한 펀드매니저이자 '헤지펀드를 주무르는 지배자'로 불린 제임스 시몬스는 명문 MIT와 하버드대에서 수학 교수를 지내다 40세에 월스트리트에 입성했다. 금융권에 뒤늦게 발을 들이고도 큰 성공을 거둔 그를 두고 미 금융권은 '수학'이 비결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국내 금융권에도 '한자리 차지' 한 수학도들이 있다. 갈수록 더 많이, 더 높이 올라가는 추세다. 수학과 출신들이 금융권에서 지속적으로 약진하는 데는 현장 경험과 단순한 복리계산만으로 설계하기 힘든 금융상품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은행 업무만 해도 단순 부동산담보 대출 위주의 여신 업무가 기업의 기술력과 미래 가치를 평가하는 복합금융으로 진화하면서 이학·공학 지식을 갖춘 수학도들이 '프리미엄'을 얻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사 업무 방식이 입사 초기와 많이 달라져 각종 회의나 업무 협의에서 말이 아니라 공식이 판단의 근거가 되고 있다"면서 "수학과 출신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회의를 이끌어가곤 하는데, 참석자들도 이런 분위기가 익숙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효율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지난해 1월 취임한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이 대표적인 수학과 출신 인사다. 시중은행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유일하다. 1966년생으로 서강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경제학,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에서 금융공학을 공부했다. KB금융지주에서 재무기획부장, 재무총괄 상무를 거친 뒤 은행에서 경영기획그룹 전무, 영업그룹 부행장 등을 지냈다.

 

이 행장은 데이터, 디지털 관련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당시엔 "핵심 성장 분야인 자산관리(WM), 기업투자금융(CIB), 자본시장, 마이데이터 등 디지털 신사업 부문에서 성과를 내겠다"고도 했다. 임기는 올해 끝나지만 연임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은행의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2조8554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인 지난해 연순익(2조9960억원)을 9개월 만에 바짝 따라잡았다. 지난 21일 취임한 양종희 KB금융그룹 회장 체제서 그가 벌써 그룹 2인자로 올라섰다는 반응도 나온다. 양 회장과 함께 KB금융 부회장을 지낸 허인·이동철은 현재 고문으로 물러난 상태다.

 

지난 9월 한화생명 부회장으로 승진한 여승주도 서강대 수학과를 나왔다. 1960년생으로 이재근 행장 6년 선배다. 2017년 6월까지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를 지내고 한화생명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18개월 뒤 대표이사에 올랐다. 2021년부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차남이자 당시 한화생명 최고디지털전략책임자(CDSO)인 김동원 현 사장에게 회사의 디지털 전환을 맡기고 자신은 본업인 보험업, 자산운용 등에 집중했다.

 

여 부회장이 승진한 데는 대표 재임 당시 코로나19 사태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된 상황에서도 새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에 대비해 영업채널을 다변화하고 상품 포트폴리오 전환을 통해 안정적 경영성과를 이끌어낸 점이 영향을 미쳤다. 특히 2021년 대형 생보사 중 처음으로 보험상품 개발과 판매를 분리하는 제판분리를 단행, 2년 뒤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점은 그의 최대 성과다. 

 

지난 20일 메리츠증권 신임 대표에 오른 장원재 사장은 수학자다. 1967년생으로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수학 석사, 미네소타대학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땄다. 2015년 메리츠화재 리스크관리 상무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메리츠화재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 겸 위험관리책임자 부사장, 2021년 메리츠증권 세일즈앤드 트레이딩(Sales & Trading)부문 부사장을 거쳐 작년 12월 메리츠증권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번 인사는 메리츠금융이 주력 자회사인 화재와 증권을 100% 완전 자회사로 편입한 '원-메리츠' 1주년을 맞아 단행된 첫 인사로, 차세대 그룹 CEO를 발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편으론 장 대표가 수학도로서 금융권 성공 신화를 잘 써 내려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장 대표의 금융권 첫 직장은 삼성증권이었는데, 2002년 당시 이공계 박사 출신 최초로 삼성증권에 입사해 증권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올해 2월 CEO가 된 서치길 IBK연금보험 대표도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1964년생으로 서강대 수학과를 졸업, 1991년 IBK기업은행에 입행했다. 은행에서 리스크관리, 전략기획 업무 등을 한 뒤 2018년 호남지역 본부장, 2019년 경영전략그룹장(부행장)을 지냈다. 

 

서 대표가 IBK연금보험 수장이 된 데는 '구원투수'가 되길 바라는 모회사 기업은행의 바람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출범 13년차인 IBK연금보험은 최근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서 대표 취임 직전인 2022년 당기순이익은 240억원으로, 전년 동기(638억원)보다 62.4% 쪼그라들었다. 취임 후 처음으로 받은 올해 3분기 성적표에선 318억원 당기순손실을 기록, 여전히 분기 적자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 폭은 줄었다. IBK연금보험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순손실은 728억원이었다. 서 대표는 취임사를 통해 '기본이 튼튼하고 활력이 넘치며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