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국내 대형 시중은행들이 일제히 기업금융 강화를 천명하면서 올해 하반기 기업영업 '뜨거운' 전쟁을 예고했다.
고금리 여파 속 정부와 금융당국 등으로부터 '이자장사' 비판을 받아온 대형 은행들이 핵심이익인 이자이익을 위해 가계대출 영업 대신 기업영업 강화 전략으로 선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기업대출이 늘어날수록 연체율 등 건전성 관리에도 힘을 더 들여야 한다는 점은 부담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지난 3일 하반기 정기인사를 단행, 본부 인력을 줄이고 영업 현장 인원을 늘리기로 했다. 지난 4월 정상혁 행장 취임 이후 이뤄진 첫 정기인사로, 영업에 우선순위를 두고자 하는 정 행장의 경영 방침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정 행장이 지난 4월부터 전국 지역본부를 방문하며 현장과의 활발한 소통을 이어왔는데, 영업 현장의 피드백을 반영해 본부부서 인력을 효율화하고 해당 직원들을 영업현장으로 재배치했다"며 "향후 현장에서의 고객 지원과 영업 동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은 이를 두고 신한은행이 특히 기업영업에 본격 속도를 낸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실제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들은 기업금융 1등 자리를 두고 어느 때보다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4월 이후 기준금리가 잇따라 오르자 가계대출 영업에 부담과 제동을 동시에 느낀 은행들이 기업영업에 힘주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이 같은 모습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하나은행도 지주 회장과 행장이 나란히 기업영업을 강조, 올해 선두 자리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 1월 취임한 이승열 하나은행장은 취임 일성으로 "영업 차별화를 실현해내겠다"고 언급, "자산관리·기업금융 등 강점에 집중해 경쟁자들과 확고한 격차를 만들겠다"고 힘줘 말했다. 작년 3월 취임한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역시 취임과 동시에 "계열사간 기업금융 협업"을 강조한 바 있다.
![4대은행 총 기업여신액 추이(단위: 조원). [자료 각 사]](http://www.fetv.co.kr/data/photos/20230728/art_16889455576703_edfd42.png)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영업 강화 각오를 밝힌 만큼 올 하반기 기업금융 판세는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신한-하나은행은 기업금융 선두 국민은행을 가파르게 추격하고 있다.
3월 말 기준 신한은행의 총 기업여신액은 189.4조원으로 1년 전(175.1조원)보다 8.2% 증가했다. 하나은행은 170조원에서 191.9조원으로 22조원 가까이 늘며 12.8% 급증했다. 두 은행은 잔액 기준 나란히 190조원대에 진입하거나 목전에 두면서 국민은행 성장세(8.9%)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하나은행은 국민은행과의 격차를 최소폭으로 좁혔으며, 신한은행은 지난해 3월 말에는 기업여신액이 1년 전보다 11.6% 증가해 국민은행(18.4%)보다 성장세가 더뎠으나 올해는 국민은행과 버금가는 수준으로 기업여신액을 늘리면서 190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여기에 4대 은행 중 기업여신 증가세(5.6%)가 가장 약한 우리은행도 출사표를 던진 터라 4대 은행 간 기업영업 쟁탈전은 더 심화될 전망이다. 이달 3일 취임한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기업금융'을 콕 찍어 언급, 중소기업 특화 채널을 신설하고 유망 기업에 투자하는 등 기업금융 영업력을 극대화하자고 당부했다.
다만 기업영업을 늘리는 만큼 덩달아 커지는 건전성 우려는 부담이다. 대형 은행들이 기업금융을 늘리는 사이, 대기업들은 실적 개선을 바탕으로 연체율이 소폭 개선된 반면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인력난과 원자재값 폭등, 매출 감소 3중고 등으로 연체율이 급등했다.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올 3월 말 중소기업 평균 연체율(1개월이상 원리금 연체기준)은 0.31%로, 전년 같은 기간(0.21%)보다 0.10%포인트(p) 상승했다. 은행 4곳 모두 중소기업 연체율이 올랐다. 우리은행이 1년 새 0.12%p 뛴 0.33%였으며, 국민은행도 0.11%p 오른 0.22%를 나타냈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1년 전보다 각각 0.09%p, 0.05%p 상승한 0.35%, 0.33%였다.
이에 대형 은행들의 기업금융 시장 점유율 만큼이나 리스크 관리 역량 역시 하반기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한미 긴축 기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고금리 속 대출 증가는 그만큼 은행에 이전보다 높은 '신용리스크' 짐을 지운다. 김용재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의 시각도 같다.
김 상임위원은 지난 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금융안정위원회(FSB) 총회에 참석해, "향후 고금리 기조가 지속될 경우 취약계층과 기업의 채무 불이행 등 신용리스크가 금융시스템의 핵심 리스크로 부각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