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재보험과 공동재보험. [자료 금융위원회]](http://www.fetv.co.kr/data/photos/20220831/art_16593120017375_33e20f.jpg)
[FETV=장기영 기자] 금융당국이 오는 2023년 보험사의 새 회계제도 도입을 앞두고 저금리 시대 보험부채 구조조정 수단으로 제시했던 공동재보험이 외면받고 있다. 보험부채 규모가 큰 대형사들이 일찌감치 실익이 없다며 도입에 선을 그은 데 이어 제도 활용에 나섰던 중소형사들도 급격한 금리 상승에 발을 빼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투자회사 칼라일그룹과 공동재보험 솔루션을 개발하며 시장 공략에 나섰던 국내 유일 토종 재보험사 코리안리의 전략에도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신한라이프는 지난해 12월 코리안리와 최대 5000억원 규모의 공동재보험 거래 협정을 체결했으나, 올해 1월 2300억원 출재를 완료하고 나머지 2700억원은 출재하지 않기로 했다.
공동재보험은 원보험사가 위험보험료 외에 저축보험료 등의 일부도 재보험사에 출재하고 보험위험 외에 금리위험 등 다른 위험도 재보험사에 이전하는 재보험이다. 유럽과 미국 등 해외에서는 계약 재매입, 계약 이전 등과 함께 보험부채 구조조정 수단으로 활용됐다.
신한라이프는 지난해 7월 통합법인 출범 이전인 2020년부터 오렌지라이프를 통해 공동재보험 도입을 검토해왔다. 오렌지라이프는 2020년 8월 이사회 산하 위험관리위원회에 공동재보험 운영 전략 수립 방안을 보고한 바 있다.
이후 신한라이프는 복수의 재보험사를 대상으로 경쟁입찰을 거쳐 코리안리와 거래 협정을 체결하고, 고금리 확정형 종신보험 보유계약 일부를 출재하기로 했다.
그러나 올 들어 급격한 금리 상승 등으로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되면서 자산·부채종합관리(ALM) 전략을 수정하게 됐다.
신한라이프 관계자는 “지난 1월 출재를 완료한 2300억원 규모의 공동재보험 외에 추가 출재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 통합 전부터 두 회사의 채권 듀레이션 조정하고 ALM 체계를 정교화해 충분한 자본 관리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2020년 1월 ‘보험 자본건전성 선진화 추진단’ 제4차 회의를 개최해 보험부채 구조조정 방안 1단계인 공동재보험 도입 방안을 처음 발표했다.
당시 공동재보험은 저금리 환경에서 고금리 역마진 위험에 시달리던 보험사들이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新)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에 대비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목받았다. 고금리 상품을 보유한 원보험사가 금리위험을 재보험사에 이전하면 재무건전성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도입되는 IFRS17은 보험부채를 기존의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새 회계제도다. 이에 따라 자본 변동성 확대 등 위험 요인을 반영해 리스크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K-ICS가 함께 시행될 예정이다.
손병두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은 “공동재보험은 오래 전부터 유럽, 미국, 일본 등 장기 저금리 상황을 경험한 선진국에서 금리위험 등을 헤지(Hedge·위험분산)하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돼왔다”며 “우리나라 보험사들도 저금리 환경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공동재보험을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불과 2년여만에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금리 상승기를 맞으면서 보험부채 구조조정 수단으로서 공동재보험의 활용도가 낮아졌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13일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 스텝(Big step)’을 단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연 1.75%에서 2.25%로 인상돼 7년여만에 2%대로 복귀했다.
실제 지난해 3월 업계 최초로 RGA재보험과 공동재보험 계약을 체결했던 ABL생명 역시 출재를 중단한 상태다.
ABL생명은 계약 체결 이후 양로보험인 ‘알리안츠 파워보험’ 보유계약 일부를 RGA재보험에 출재했으나, 추가 출재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
ABL생명 관계자는 “금리 상승 등으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져 공동재보험 추가 출재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공동재보험의 흥행 실패는 초저금리가 이어지던 제도 도입 초기부터 이미 예견된 상황이었다.
국내 3대 대형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보험부채가 많고 역마진 위험이 높은 보험사들이 공동재보험을 활용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대 초반까지 연 5% 이상의 고금리를 보장하는 확정금리형 상품을 경쟁적으로 판매한 생보사들은 지속적인 금리 하락으로 채권 투자수익률이 하락한 가운데 과거 판매한 고금리 상품에는 계속 높은 금리를 적용해야 해 역마진 현상이 심화됐다.
삼성생명이 2020년 8월 개최한 2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유호석 부사장은 공동재보험 활용 계획에 대한 질문에 “재보험을 통해 역마진을 헤지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한 바 있으나, 헤지 가능 여부를 떠나서 부가되는 비용이 과다해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그는 “재보험이라는 헤징 전략을 구사하는 대신 이익이 나는 변동형 준비금 확대를 통해 자연적 부담 감소를 도모하는 것을 원칙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이 대형사에 이어 중소형사들도 공동재보험을 외면하면서 시장 확대를 염두에 두고 공략에 나섰던 코리안리 역시 전략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코리안리는 공동재보험 계약 인수를 위한 전담팀을 설치하는 등 2018년부터 제도 도입에 대비해왔다.
특히 2020년 7월에는 칼라일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국내 보험사를 대상으로 한 공동재보험 솔루션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코리안리는 칼라일그룹과의 제휴를 통해 공동재보험 시장 확대 시 필요한 담보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자산운용 역량과 글로벌 재보험사업 노하우를 활용한다는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