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김현호 기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3년 넘게 이어지던 무역분쟁을 완화하면서 철강사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철강 제품 가운데 유럽산은 무관세를 적용받아 국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위축될 우려가 커진 것이다. 수익성에 ‘비상등’이 켜진 가운데 정부는 민·관 합동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철강 제품이 쌓여있는 모습 [사잔=포스코]](http://www.fetv.co.kr/data/photos/20211144/art_1635811987283_76e514.jpg)
◆美-EU, 관세 부과 합의...K-철강, ‘발 등에 불’=지난달 31일(현지시간), G20 정상회의와 제26차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6) 참석을 위해 유럽을 순방중인 조 바이든 대통령은 EU와 관세 분쟁을 완화하기로 했다. 발디스 돔브로브스키 EU 무역대표는 당시 SNS를 통해 “무역 분쟁을 중단하고 미래 글로벌 협정에 대한 협력을 시작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행정부 시절 EU와 갈등을 벌인지 3년6개월 만이다.
지난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앞세워 EU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 10%의 수입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EU는 미국산 오토바이와 청바지, 위스키 등 28억유로(약 4조원) 규모 제품에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12월부턴 관세 부담율이 50%까지 올라갈 예정이다. 이번 합의로 매년 유럽산 철강 330만톤은 관세 없이 미국에 유입될 수 있게 됐다. 이전부터 관세가 면제됐던 제품까지 고려하면 무관세로만 430만톤에 달하는 철강 물량이 수출되게 됐다.
이번 합의안에는 중국산 철강이 유럽을 경유해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이 EU와의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중국을 고립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도 “중국은 오랫동안 값싼 철강을 유럽 등을 통해 미국으로 보냈다”며 “이는 가격을 떨어뜨리고 미국의 산업이 경쟁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미국 정부는 이번 합의 성과에 대해 ‘중국의 철강 경쟁에 대한 대응’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번 합의로 국내 철강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쿼터제를 적용받고 있어 대미(對美) 수출량을 늘리기가 어려운 마당에 무관세로 유럽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철강 수출량은 전년 대비 6.4% 증가한 158만7765톤에 달했지만 2019년은 139만7973톤, 2020년에는 127만5029톤으로 떨여졌다. 지난해 철강제품 수출량도 2018년 보다 25.3% 감소한 97만1381톤에 그쳤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국내 철강사들이 관세를 면제 받는 대신 직전 3개년 전체 철강 수출 물량을 70%로 제한받는 ‘쿼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 ‘철강 빅3’…수익성 우려=미국과 EU의 합의로 한국은 다급해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오후에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철강사들과 민관 합동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이번 합의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산업부 담당 국장급 직원을 워싱턴에 파견해 미 무역대표부와 상무부와의 면담을 추진하기로 했고 232조 재검토 및 개선을 요청하기로 했다.
올해에는 코로나19로 위축됐던 경기 회복을 위해 철강 소비가 확산되면서 철강업계의 ‘봄날’이 찾아왔지만 이번 합의에 따라 국내 철강 빅3(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의 수익성에 우려가 나온다. 3사 모두 생산 물량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데 쿼터제는 유지되는 반면, 유럽산 제품은 무관세 혜택으로 가격을 내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국내산 철강이 미국에 수출되는 물량은 260만톤으로 한정돼 있다. 쿼터제로 수출량을 늘릴 수 없는 만큼 유럽산 제품과 가격 경쟁을 벌이기가 어려워진 셈이다. 반면 EU는 무관세를 적용받는 철강 외에도 관세를 내고 수출 물량을 늘릴 수 있다. 국내 기업은 현지 생산 공장을 통해 미국에 제품 판매량을 늘릴 수 있지만 포스코를 제외한 다른 업체는 가공공장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대제철은 미국 내 SSC(Steel Servic Center) 법인을 통해 자동차용 강판을 판매하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한 물량을 현지에서 판매해 쿼터제가 적용된다. 또 동국제강은 생산 품목 가운데 철근과 형강은 국내에서 소비되지만 컬러강판을 수출하고 있다. 회사의 미국 매출은 국내 다음으로 높다. 다만, 포스코는 전체 매출 가운데 중국과 동남아,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 올리는 매출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덜한 편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쿼터제는 일부 회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과 EU의 이번 합의에 따라 공동 대응에 나서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