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오세정 기자] 주요 시중은행들이 자금세탁방지(AML·Anti-Money Laundering) 시스템 도입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다음 달 국제기구인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AML 관련 상호평가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FATF는 국제연합(UN)과 안보리 결의와 관련된 금융조치를 각국 정부와 금융회사들이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1989년 설립된 국제기구다. FATF는 매년 회원국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는데 올해는 한국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실태평가를 진행한다.
또한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7월부터 적용된다. 개정안에는 금융사가 임직원의 AML 업무 감독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위법 행위가 적발될 경우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징계도 가능하다.
신한‧KB국민‧KEB하나‧NH농협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의 ALM 시스템 구축은 초기단계로 인력이나 운영 조직 등에서 글로벌 수준에는 미흡하다는 평가다.
13일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신한은행은 자금세탁방지 업무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세계 110개국의 국가 기관과 기업에서 인정받고 있는 컨설팅 기업인 ‘톰슨 로이터사’의 AML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해외점포 주재원들과 본점의 컴플라이언스 업무 담당 직원 및 관련 부서 실무자 등 600여명을 대상으로 해당 교육을 시작했다. 이들은 3개월 동안 자금세탁방지제도와 경제 제재 조치에 대한 개념, 법규 및 제도, 업무처리 절차 등을 숙지하면서 업무 역량을 높여갈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또 국내 전문 교육기관의 프로그램과 병행하는 동시에 심화 교육 과정을 추가로 운영, 국내 및 글로벌 자금세탁방지 업무 전문가를 양성해 나갈 계획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제도 이해나 기본지식이 필요한 데다 해외 이슈들이 많아 글로벌 수준의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이라며 “교육프로그램을 지속 강화하는 동시에 전행적인 차원에서 자금세탁방지 관련 리스크도 점차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우리은행도 지난달 자금세탁방지 내부통제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이를 위해 자금세탁방지부를 자금세탁방지센터로 격상하고 전문인력을 현재 36명에서 110여명으로 대폭 증원한다. 또 준법감시인 산하 조직인 준법지원부도 준법감시실로 격상하고 인원을 확충해 준법감시와 점검 역할을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우리은행은 시중은행 중 최초로 선진 금융사의 내부통제 3중 확인체계를 도입할 예정이다. 모든 사업그룹 내 고객알기 전담 업무팀을 신설해 영업점 거래를 1차로 확인한 뒤 자금세탁방지센터의 조직과 전문인력을 통해 2차로 확인하며 검사실의 검사인력이 3차로 확인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하나은행의 경우 자금세탁방지부 내 전문인력을 증원하고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고도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 준법지원부 내 자금세탁방지팀을 자금세탁방지부로 독립한 하나은행은 AML 전문인력도 2017년 15명에서 지난해 27명, 올해 28명으로 증원했다. 하나은행은 이번 작업을 통해 AML 전문인력을 10여명 이상 추가 증원하고 AML 시스템과 관련한 고객위험평가모델 등도 고도화할 계획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올해 FATF 국가상호평가와 국내외적으로 자금세탁방지 규제가 강화되는 것을 계기로 국내 금융회사도 선진 내부통제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면서 “선진 글로벌 금융회사 수준의 자금세탁방지 내부통제 체계를 갖춰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요 시중은행들의 AML 전담 인력은 외국계 은행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다. 현재 주요 시중은행의 전담 인력은 30~50여명 수준이다. 외국계 은행인 SC제일은행과 씨티은행의 AML 전담 인력이 120여명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특히 뉴욕 금융감독청(DFS)으로부터 자금세탁 방지 관련해 내부통제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1100만 달러 규모(약 120억원)의 과태료를 부과 받았더 농협은행은 전담 인력이 50여명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은행은 거액의 과태료를 부과받은 이후 20여명 수준이던 인력을 두배 수준으로 늘렸다.
사내변호사 단체인 인하우스카운슬포럼 김준수 변호사는 “금융기관이 거래 고객에 대해 기본 정보들을 파악하고 의심거래를 잡아내 보고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체계를 구축해가는 초기 단계에 있다”며 “시스템 도입에 앞서 어떤 걸 의심거래로 볼 것인가하는 기준 마련이나 규제를 이해하는 차원의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