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공정한 거래와 상생은 산업 전반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최근 포스코이앤씨에서 연이어 발생한 산재로 협력업체 안전 관리를 비롯한 거래 전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FETV가 하도급법 공시를 통해 산업계 전반의 하도급 대금 결제 실태를 짚어봤다. |
[FETV=나연지 기자] SK그룹 주요 상장사들은 하도급 대금결제 과정에서 대체로 법정 기한을 준수하고 ‘현금성 결제 100%’를 달성했다. 표면적으로는 협력사 보호 성적표가 완벽해 보이지만, 실제 지급 속도를 들여다보면 계열사별 편차가 뚜렷하다. 반도체·통신 계열은 10일 이내 단기 지급이 집중된 반면, 플랜트·지주·제약 계열은 장기·분산 지급 구조가 나타났다. 겉과 속이 다른 양면의 성적표다.
2025년 상반기 하도급법 공시에 따르면 SK텔레콤은 그룹 내에서도 대금 지급 속도가 가장 빠른 편이다. 전체 대금의 90.17%를 10일 이내 지급했고, 나머지는 10일 초과 15일 이하 구간에서 모두 처리됐다. 15일을 넘는 지급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ICT·플랫폼 산업 특성상 정기적인 요금 정산과 반복 거래가 많아 협력사 대금 지급이 빠르게 돌아가는 구조다. 전액 현금성 결제라는 점도 안정성을 높였다.
SK하이닉스도 속전속결이다. 10일 이내 87.74%, 10일 초과 15일 이하 12.26%로 사실상 2주 안에 전액 지급했다. 현금 결제율은 87.67%지만, 상생결제·어음대체를 포함한 현금성 기준으로는 100%다. 반도체 장비·부품 협력사가 다수인 업 특성에도 단기 유동성 보장 구조가 작동한다.
지주사인 SK㈜는 단기 지급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 10일 이내 지급은 78.32%, 10일 초과에서 15일 이하 구간 15.23%까지 합치면 93.55% 수준이다. 그러나 15일 초과 30일 이하 3.84%, 30일 초과 60일 이하 2.59%, 60일 초과도 0.02%가 존재한다. 소규모이긴 하지만 ‘전계열 100% 기한 준수’라는 평가와는 결이 다르다. 지주사 특성상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와 복합 거래가 얽혀 장기 구간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협력사 입장에서는 자금 운용에 부담이 생길 수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급 시점이 특정 구간에 몰려 있다. 15일 초과 30일 이하 구간 100%로 단기 지급 비중은 전혀 없다. 연구개발·임상·위탁생산 등 제약업 특유의 정산 주기가 반영된 결과다. 현금성과 법정 준수는 문제없지만, 협력사 입장에서 ‘대금이 들어오기까지 최소 보름’이라는 현실적 제약은 존재한다. 안정성은 높지만 즉각적 유동성 체감은 떨어지는 구조다.
SK오션플랜트는 그룹 내에서 가장 장기화·분산 구조가 두드러졌다. 10일 이내 7.6%에 불과했고, 10일 초과 15일 이하는 24.56%, 15일 초과 30일 이하 47.91%, 30일 초과 60일 이하 19.93%로 나타났다. 조선·플랜트 산업의 마일스톤 기반 정산, 검수 단계별 지급 구조가 반영된 결과다. 현금성 비율 100%를 달성했음에도 단기 유동성 보장은 사실상 미흡하다.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납기와 자금 운용의 이중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처럼 동일한 현금성결제율 100%라는 외형적 성적표 뒤에는 계열사별 속도 격차가 숨어 있다. SK텔레콤과 하이닉스가 ‘10일 내 지급’으로 단기 유동성을 보장하는 구조라면, SK오션플랜트와 SK바이오사이언스는 정산 주기 특성상 한 달 이상 걸리는 구조다. SK㈜도 일부지만 장기 구간이 존재했다. 결국 협력사가 체감하는 신뢰도는 단순한 ‘현금성 비율’이 아니라 ‘10일 내 지급 비중’에 의해 갈린다.
업계에서는 “지급 수단의 안정성과 속도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금성 100%를 달성했다고 해도 대금이 30일 이상 걸려 지급된다면 협력사의 운전자금 부담은 여전하다. 특히 플랜트·지주 계열은 납품 단가 인하 압박까지 맞물려 구조적 부담이 크다는 분석이다.
정책적 관점에서도 단순한 법정 기일 준수 여부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 거래의 투명성을 강화해 왔지만, ‘60일 준수’라는 지표는 협력사의 현금흐름을 세밀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ESG 평가에서도 ‘현금성 결제율’보다는 ‘지급 기간별 비중’, ‘10일 내 지급 비율’, ‘장기 구간 최소화’가 주요 지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평가 기관들은 ‘10일 내 비중’, ‘30일 이상 구간 축소 여부’, ‘정보 공개 투명성’을 체크리스트에 포함하기 시작했다. SK그룹도 상생결제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있지만, 오히려 일부 계열사에서는 상생결제가 장기 구간 지급의 틀 안에서 활용되는 경우가 있어 개선이 요구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겉으로는 현금성 100%지만 계열사별 체감은 천차만별”이라며 “특히 오션플랜트·바이오 계열 하도급 업체의 경우 유동성 부담이 여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