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박민석 기자] 한국거래소가 주식 거래시간을 최대 12시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표면상으로는 주요 해외거래소가 거래시간을 늘림에 따라 투자자 유출 방지를 우려한 행보라지만, 일각에서는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가 키운 시장에 뒤늦게 올라타려는 ‘공공기관식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증권사 등 회원사를 대상으로 주식 거래시간 확대에 대한 설문을 진행 중이다. 논의되고 있는 유력한 방안은 현재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인 정규장을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연장하는 것이다. 이 같이 거래소의 거래시간이 확대되면, 현재 넥스트레이드가 독점하고 있는 프리마켓(8시~9시)과 애프터마켓(오후 3시30분~오후 8시) 시장에서 거래소의 입지 확대가 기대된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시간 확대는 투자자 유입 증가로 수수료 수익 증대 효과가 기대되지만, 시스템 개편 비용과 인력 운용 부담 등 실무적 문제도 있어 회원사 의견을 취합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거래소는 회원사 의견 취합 이후 금융위원회 인가, 정관 변경, 시스템 구축 등의 절차를 거쳐 거래시간 확대를 추진할 예정이다.
◇도입 배경엔 해외거래소 24시간 거래와 ATS 성장
한국거래소가 거래시간 확대에 나선 배경에는 글로벌 거래소들의 24시간 거래 도입 움직임과 국내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의 가파른 성장세가 동시에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미국 나스닥은 내년 하반기부터 24시간 거래 체제 도입을 예고했으며, 영국 런던증권거래소 역시 거래시간 확대의 타당성을 검토 중이다. 이에 따라 국내 투자자 자금의 해외 유출 가능성이 제기되자 거래소도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선 것이다. 실제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도 지난 5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이유로 거래시간 연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지난 3월 출범 후 성장세가 가파른 넥스트레이드를 겨냥한 견제 성격이 더 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넥스트레이드에 따르면 지난 7월 31일 거래대금은 11조6113억원, 거래량은 2억4861만주로 나타났다. 이는 동기간 한국거래소의 거래대금과 거래량의 각각 54%, 18%에 달하면서 출범 4개월만에 점유율에서 많은 부분을 따라 잡은 셈이다. 넥스트레이드는 현재 한국거래소와 달리 프리, 애프터마켓을 지원할 뿐 아니라 거래수수료도 20%가량 낮기에 이 같은 성장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시장법상 대체거래소(ATS)는 6개월 평균 거래량이 한국거래소 전체 거래량의 15%를 넘기면 거래 중단 조치를 받을 수 있는데, 당일 기준으로는 상한선에 벌써 근접한 셈이다.
최근 학계에선 이러한 거래량 상한 규제가 ATS 시장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당국에서도 규제 완화를 검토 중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해외 자금 유출 대응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넥스트레이드에 점유율을 뺏기고 있어 이를 견제하려는 성격이 강하다”며 “프리·애프터마켓에 거래소가 진출하면 넥스트레이드의 거래량이 크게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넥스트레이드 성공하니 카피?…‘혁신’보다 ‘안정’ 택한 거래소
일각에서는 거래소의 이 같은 ‘뒤늦은’ 거래시간 확대 시도가 넥스트레이드의 성공을 확인한 뒤 따라가는 ‘무임승차’에 가깝다는 비판도 나온다. 거래소는 2015년 공공기관 지정 해제 이후에도 근 10년간 거래시간 확대에 대한 뚜렷한 움직임이 없었다.
넥스트레이드가 등장하기 전부터 거래시간 확대 필요성 제기됐지만 수익성 불확실성과 근로시간 증가에 따른 노조 반발을 우려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한국거래소가 거래시간을 확대하겠다는 소문이 돌자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한국거래소지부는 서울 사옥에 반대 현수막을 걸고 "ATS에 점유율 넘겨주고 한국 대표시장으로서 운명을 다했다"며 "협의 없는 독단적 거래시간 연장에 증권 업계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운명했다"며 집회에 돌입했다.
![한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한국거래소지부에서 한국거래소 서울 사옥 1층에 게시한 현수막 [사진 FETV]](http://www.fetv.co.kr/data/photos/20250831/art_17540317227418_164b85.jpg?iqs=0.27994545771547463)
업계에선 넥스트레이드라는 성공 사례가 생기자 거래소가 이제야 실무 부담과 노조 반발을 무릅쓰고 거래시간 확대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소는 사실상 독점 사업자인데도 ATS가 등장하기전 새로운 시장 개척엔 소극적이었다”며 “정부 정책과 사업 안정성 위주로만 움직이는 과거 공공기관 마인드를 여전히 벗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