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올 한 해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이 은행채 발행을 늘리며 현금 확보에 몰두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비율이 상향 조정되면서 은행들이 자금 조달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LCR은 한달 내로 빠져나갈 순현금 유출액 가운데 현금화하기 쉬운 자산을 얼마나 보유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로, 금융기관 건전성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유동성 지표다. 은행이 LCR을 높이려면 정기예금 같은 수신액을 늘리거나, 은행채를 발행해야 한다.
금리 인하 효과로 이자이익에서 나오는 수익률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면서, 비(非)이자이익을 끌어올리려 적극적으로 유동성(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금리가 내리면서 은행채를 찍는 비용이 이전보다 낮아진 것도 은행채 발행이 늘어난 원인으로 꼽힌다. 은행채는 대부분 고정금리여서 은행 입장에서는 최대한 금리가 낮을 때 발행해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2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까지 발행된 올해 은행채 발행 규모는 총 218조3350억원에 달한다. 채권을 찍어낸 금액에서 갚은 금액을 뺀 '순발행금액' 기준으로 따지면 26조759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506억원 순상환했던 것과 비교하면 27조5000억원 이상 폭증한 수치다.
올해 은행채 순발행액은 지난 2020년(45조4341억원)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금액이다. 당시 때마침 금리가 낮아지기 시작한 데다 한국은행이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대상에 은행채를 넣기로 하면서 은행들은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축적에 적극 나섰다. 이후 금리가 우상향하면서 은행채 순발행액은 2021년(25조3250억원)→2022년(11조3420억원)→2023년(-7506억원) 3년 연속 하락하다가 올해 4년 만에 반등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리에 민감하던 시기에는 은행채 수요가 미달되면 평판이나 신용도가 타격을 입을 것을 고려해 채권 발행을 망설이는 경향이 있는데, 올해는 금리 인하가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일찌감치 나와 은행채 발행 부담이 이전보다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은행채 금리는 보통 만기 기간이 같은 국채금리에 은행별 가산금리를 더해 책정한다. 은행들은 다른 기업에 비해 신용도가 높기 때문에 시장금리보다 낮은 수준에서 채권을 찍을 수 있다.
은행들은 이렇게 쌓은 자금을 통해 일단 LCR 관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현재 97.5%로 유지되고 있는 은행 LCR 규제비율을 내년 1월 1일부터 100%로 환원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2020년 4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LCR 규제비율을 기존 100%에서 85%까지 완화했다가, 지난 2분기 말 95%, 3~4분기 97.5%로 순차적으로 정상화했다.
은행들은 또 채권 발행으로 쌓은 자금을 적극적으로 굴려 수익성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일반적으로 기준 금리가 높을 때 은행채를 발행하면 조달 비용을 감안해 안정적인 대출로 자금을 운용할 수 밖에 없다. 다른 방법으로 운용하는 경우 도리어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내려가면 이자이익이 악화될 수밖에 없어 수익성을 강화하기 위해 운용할 자산을 늘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올해 3분기 말 5대 은행의 평균 순이자마진(NIM)은 1.6%로 전년 같은 기간(1.7%)보다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