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령 선포 이후 금융시장이 요동쳤습니다. 환율이 급등하고, 2금융권은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2년 전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 신청 사태 당시의 금융 혼란을 떠올리게 합니다."
복수의 금융사 관계자들은 최근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정치적 결정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금융시장 전반에 얼마나 민감하게 작용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2월3일 밤 10시30분 → 12월4일 4시45분. 윤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해제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시간으로는 고작 '6시간'이다.
대부분 잠든 밤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이 사태를 모른 채 평온히 밤잠을 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태 전과 후로 한국 경제의 상황은 극명히 달라졌고, 특히 금융시장은 여전히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엄 사태 이후 외환 시장은 불안감이 고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 외국환거래에 따르면 계엄 선포 다음 날인 12월4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달러당 최고 1446.5원까지 상승했다. 이는 전날 시가(1395.1원) 대비 50원 이상 급등한 수치다.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선 것은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9개월 만에 처음이다.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단기간에 외화 거래가 폭증하자, 일부 금융사에서는 환전 서비스가 일시 중단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카카오뱅크는 4일 오전 2시부터 8시까지 '해외계좌 송금 보내기' 서비스를 일시 중단했으며, 토스뱅크도 오전 1시20분부터 9시까지 외화통장을 통한 외화 환전 거래를 중단했다.
저축은행업권과 상호금융은 계엄 선포 이후 뱅크런 사태를 우려하기도 했다. 저축은행중앙회는 수신 잔액이나 예금 입·출금 등 유동성 추이를 실시간으로 점검했다. 상호금융도 긴급 회의를 열어 시스템 상황을 확인하고, 이상 징후 여부를 파악했다.
상호금융권 관계자는 "새벽 시간 계엄령이 선포돼 주 고객층인 고령층의 동요가 적었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며 "계엄령이 장기화됐다면 뱅크런 등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금융시장은 정치적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2022년 9월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의 개발을 맡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을 신청하겠다고 밝히면서 채권시장에 자금경색이 일어난 바 있다. 그간 지방자치단체가 보증을 선 공기업 어음은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국채와 동일한 신용도를 인정받아 왔으나, 이같은 발언에 신뢰가 깨진 셈이다.
이에 2022년 초 2%대 중반대까지 내렸던 여신전문금융채권(여전채) 금리는 레고랜드 사태 직후인 같은 해 10~11월 6.0%대까지 치솟았다. 자금경색으로 채권 투자 수요가 얼어붙으면서 여전채 가격이 급락하고, 반대로 금리는 급등했다.
여전채는 카드사와 캐피탈사 등 여신전문금융업을 하는 회사가 발행하는 채권이다. 이 회사들은 은행 등과 달리 수신 기능이 없기 때문에 여전채를 발행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다. 여전채 금리는 올해 들어 4%를 밑으로 떨어진 이후 12월20일 기준 여전채(3년물, AA+) 평균 금리는 3.195%를 기록했다.
2022년 9월 강원도지사의 발언으로 촉발된 채권시장 자금경색 이후 여전채 금리가 정상화되기까지는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사태 역시 금융시장에 장기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울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금융시장의 불안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