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올 한 해 가계대출 확대에 제동이 걸린 국내 대형은행들은 일찌감치 기업금융으로 눈을 돌려 당기순이익 확장세를 이어갔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져 역대급 이자이익이 예견된 상황에서 은행들은 수익구조 다변화를 위해 비이자이익 강화에도 집중, 순위를 뒤바꿔가며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5.5% vs 8.2%...뜨거웠던 '기업금융' 전쟁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올해 9월 말까지 총 당기순이익으로 총 12.7조원을 거뒀다.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로 국민·신한은행 등이 1조원 이상의 충당금을 적립했음을 감안하면 역대 최대 실적이다. 국민·신한·하나은행 3곳은 3분기(7~9월) 순익만 1조원이 넘었다. 남은 4분기까지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신한은행은 연 순익 4조원을 돌파, 은행권 최초 기록을 쓰게 된다.
대형은행들은 올해 고금리 효과 '정점'을 누렸다. 5대 은행이 9월 말까지 거둔 이자이익은 31.4조원으로 카드·증권·보험 등을 거느린 5대 금융지주 이자이익(38조원)의 82.6%를 벌어들였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상승세 억제' 기조가 은행권에 압박으로 작용하면서 기업대출 확대를 꾀한 점이 이자이익 증가를 견인했다. 5대 은행의 연초 대비 9월 말 기준 가계대출 성장률은 평균 5.5%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기업대출 성장률은 평균 8.2%로 가계대출을 3%포인트가량 웃돌았다.
지난해 '이자장사' 지적에 일찍이 가계대출 힘을 빼고 기업대출 확대에 나선 5대 은행은 올해도 기업금융 확장 기조를 이어가면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특히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성장세가 가팔랐다. 두 은행의 연초 대비 기업대출 성장률은 각각 11.5%, 11.9%로 자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덕분에 신한·우리은행은 작년 전체 순익을 올해 3개 분기 만에 뛰어넘었다.

◇존재감 커진 '비이자이익'...신한·우리 선방에 순위 재편
고금리 잔존 효과로 은행들의 '막판' 이자이익 고공행진이 예견되면서, 올해는 각 은행들의 '영업력' 본 실력을 판가름할 수 있는 비이자이익 확장세에도 관심이 모였다. '비이자이익'은 수수료, 신탁, 유가증권, 외환·파생관련이익 등 예대마진을 통해 얻는 이자이익을 제외한 나머지 수익을 통칭한다. 고객을 통한 예금과 대출이 아닌 은행 자체의 자산운용 실적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부문으로, 은행들은 금리 인하로 순이자마진(NIM) 하락세가 예상되자 예년보다 비이자이익에 강조점을 둬왔다.
올해는 신한·우리은행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신한은행의 9월 말 누적 비이자이익은 6775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5313억원)보다 27.5% 증가했다. 지난해부터 비이자이익 드라이브를 건 신한은행은 2022년 9월 말 3536억원에서 2년 만에 그 규모를 2배로 키워 상대적 약점이던 비이자이익을 순익 효자로 만들어냈다. 국민은행이 ELS 여파로, 농협은행이 카드 실적 영향으로 비이자이익이 주춤한 사이 신한은행은 30%가까이 성장하면서 비이자이익 순위가 지난해 5등에서 올해 3등으로 올랐다.
우리은행은 더 큰 폭으로 비이자이익이 증가했다. 9월 말 9790억원을 기록, 1년 전(5580억원)보다 75.4% 급등했다. 5대 은행 중 유일한 9000억원대 기록으로, 이번 실적으로 우리은행은 비이자이익 순위 지난해 4등에서 올해는 1등을 기록했다.
내년에는 금리 인하의 본격적인 효과로 NIM 하락이 예고돼 있어 총영업이익과 직결된 비이자이익 확대를 향한 은행권 경쟁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1년 새 재편된 비이자이익 순위는 이자이익 외 은행들의 수익 다각화 고민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금융연구원은 '국내은행의 효율성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금융사의 비이자이익 증대를 위한 수익구조 다변화는 향후 생존과 발전에 필수적이므로 자산관리서비스 등을 통해 비이자이익 부문 규모의 경제와 비용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