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미국의 '무디스(Moodys)'가 올해 개최하는 콘퍼런스 2024를 위한 준비 일환으로 오늘날 '보험'을 형성하는 주요 리스크 중 대표적인 10대 리스크를 지난 5월 발표한 바 있다. 보험의 10대 리스크 가운데 하나로 ʻ장수 리스크ʼ를 들고 있다.
장수 추세가 확대되는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해 고령자의 예상 초과 사망 문제가 대두되었으나, 이제는 ʻ건강한 삶ʼ, 즉 만성질환이나 장애가 없는 건강 생활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비만, 지나친 음주, 약물, 건강치 못한 식단, 좌식 생활방식, 헬스케어의 불충분한 공급 등으로 인해 장수의 이득이 상쇄되고 ʻ건강한 수명ʼ을 늘리기 어려워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노년의 만성질환과 장애로 어려움을 겪게 됨에 따라 보건 시스템이나 의료비 증가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다.
'고령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사회적인 문제는 노후 의료비 부족과 노후 소득의 감소일 것이다. 노후 소득 준비에 대해서는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연결되는 노후 소득보장 3층 구조에 대해 관심이 한층 커지고 있다. 그에 반해 국민건강보험이 비교적 잘 갖추어진 우리나라에서는 노후 의료비 준비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 것 같다. 이는 건강보험이나 의료 서비스가 어느 정도 충족되고 있어 중증 환자를 제외하고 젊은 세대나 중년층 세대들은 노후 의료비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의 고령화 진전으로 고령 인구의 증가는 노후 건강과 의료비부담을 늘리게 됨에 따라 개인은 물론 정부의 부담도 동시에 증가할 수밖에 없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건강수명은 평균수명만큼 늘지 못해 양자 간에 차이가 나게 되는데 이러한 차이는 노인들의 의료비 증가를 초래한다. 건강수명은 약 73세, 평균수명은 약 83세로 약 10년 정도의 차이가 나는데, 이는 10년 전과 비교해 오히려 차이가 약 1살 정도 더 늘어난 셈이다. 이와 같이 건강치 못한 노후 기간의 증가로 인해 의료비 부담 증가나 고령자의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에 노후 의료비 준비에 대해서도 노후 소득만큼 중요하게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적 문제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2023년 11월 발간, 2022 건강보험통계연보)를 보면 2022년 65세 이상 노인 건강보험 적용인구는 875만명으로 전체 대상자의 17.0%이며, 2022년 노인진료비는 45조7647억원으로 2018년에 비해 1.4배 증가했다. 고령자 1인당 본인부담 의료비도 전체 인구에 비해 약 2.7배 정도로 월등히 높음을 알 수 있는데, 고령층에 접어들면서 의료비 부담이 급증해 경제적인 부담을 가중시킨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오는 2028년에 고갈될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건강보험의 보장 정책이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시 되고 있어 고령자의 의료비 지출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에 정부 차원에서 국민건강보험 재정 강화를 위해 노후 의료비 사전적립제도를 검토한 바 있다. 이는 싱가포르의 의료저축계좌(Medical Savings Account)나 미국의 건강저축계좌(Health Savings Account)와 상당히 유사한 제도도입을 추진했다. 이 제도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 인상이 어렵다면 공적연금 보완을 위해 사적연금에 가입하는 것처럼 국민건강보험을 보완하기 위해 개인의 의료비를 사전에 적립하는 것이다. 싱가포르나 미국의 제도는 적립기에도 의료비로 인출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의 의료저축계좌는 노후에만 의료비로 인출할 것을 검토했다.
그러나 이는 도입되지 않았고 기존에 이미 판매되었던 연금저축 재원에서 일부 의료비로 활용할 수 있는 연금저축 의료비 인출제도가 2014년 2월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연금저축 의료비 인출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으나 동 제도의 이용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의료비 인출제도가 활용되지 못하고 이유로는 현재 연금저축 가입자들의 연금 수령액은 평균적으로 매우 적고, 연금 수령 기간도 짧기 때문에 연금저축을 노후 의료비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연금저축 가입자들도 이 제도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고, 정부나 금융회사에서도 제도 자체의 홍보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후 의료비는 노후 소득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80대 고령자는 공적연금을 제외한 사적연금 수령이 80세 이전에 종료되는 경우가 많아 경제적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나아가 국민건강보험 재정 고갈이 우려되고 있고 고령층의 건강보험 보장률을 더 강화하지 못하면 의료비 부담을 공적연금이나 개인 자산으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10년 전에 노후 의료비 재원 마련을 위해 의료저축계좌 등이 검토되었으나 여러 가지 제한사항으로 도입되지 못한 점을 상기헤 2025년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재고할 시점이 다가왔다.
김형기 연세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