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글로벌 증시를 움직이는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들이 국내 리딩금융을 다투는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 투자에 매우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두 금융그룹은 총 9조원 규모의 당기순이익을 달성,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지만 글로벌 투자자들의 반응은 '무관심'에 가깝다.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시장 상황과 높은 이자이익 의존도 외에도,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확실한 성장성을 보여주지 못한 점과 상대적으로 빈약한 주주환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두 금융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이 해외 투자설명회(IR)에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이들 수장의 행보가 세계적인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KB금융의 '5% 이상 주주'에 이름을 올린 글로벌 투자자는 미국 최대 은행 JP모간체이스(JP Morgan Chase Bank)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 Fund Advisors) 두 곳으로, 이들 지분은 각각 6.22%(2543만5390주), 6.02%(2505만939주)로 나타났다. 지난해 3월 말보다 JP모건은 0.46%포인트(p) 늘었으며, 블랙록은 지분율과 주식 수에 변화가 없었다. '5% 이상 주주'는 기업 경영에 있어 유의미한 지분을 가진 주주를 의미한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5% 이상 보유자에게 그 내용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신한지주는 블랙록만이 5% 이상 주주에 글로벌 투자자로서 이름을 올렸다. 3월 말 기준 지분율 5.75%(2906만3012주)로, 1년 전(5.63%)보다 0.12%p 높아졌다. 하지만 이는 신한지주의 발행주식 총수에 따른 변화일 뿐 블랙록이 보유한 신한지주의 주식 수는 KB금융과 마찬가지로 작년 3월 말과 같았다.
블랙록은 수년째 KB금융과 신한지주 주식을 단 한 주도 늘리지 않았다. 블랙록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KB금융 주식 2505만939주를 지난 2021년 2월 사들였으며, 신한지주의 2906만3012주는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2018년 9월 매입했다. 공시에 따르면 블랙록은 KB금융 2년, 신한지주 4년 6개월 동안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한 것이다.
블랙록의 자산 운용 규모가 지난 3월 말 기준 1경3000조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투톱' 금융그룹을 외면한 사실은 뼈 아프게 다가온다. 지난해 KB금융과 신한금융은 각각 연 순익 4.4조원, 4.6조원을 기록,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지만 글로벌 큰손의 마음을 끄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는 같은 기간 세계적인 투자자들이 하나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의 지분을 대폭 늘린 것과 비견된다. 3월 말 기준 블랙록은 하나금융 지분 6.19%를 보유, 5% 이상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앞서 지난 2013년 하나금융 지분 5.08%를 보유한 바 있던 블랙록은 이번 투자로 인해 약 9년 만에 다시 하나금융의 지분을 늘리게 됐다.
운용자산이 3900조원에 달하는 미국 자산운용사 더캐피탈그룹(The Capital Group Companies)은 지난 2월 하나금융에 지분 5.08%를 최초로 투자했는데, 현재는 5.55%까지 늘린 상황이다. 블랙록은 우리금융 지분도 사들여 현재 5.07%를 갖고 있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3월까지만 해도 하나-우리금융의 5% 이상 주주에 글로벌 투자자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본지 2022년 5월 12일자 "응답하라 블랙록...우리금융 이번엔 성공할까" 참고).
KB-신한금융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1~3월)까지 사상 최대 순익을 거뒀음에도 막대한 자금을 굴리는 세계적인 투자자들이 지분 확보를 머뭇거리는 데는 향후 수익성에 대한 '신뢰'가 굳건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들의 실적이 신사업 구축, 글로벌 무대 확장 등 적극적인 이윤 추구의 결과라기보다 역대급 유동성과 금리 인상이 만들어준 결과물이라는 인식이 깊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매력이 없는 주주환원책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의 지난해 연간 배당성향은 각각 26%. 23.5%로, 글로벌 투자자들의 눈높이에는 한참 못 미친다.
'주주환원'과 '수익성' 잣대는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들이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으로 눈을 돌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하나금융은 국내 금융그룹 중 유일하게 2006년 이래 17년 동안 중간배당을 지속해 투자자들의 마음을 붙잡아 두고 있으며, 우리금융은 증권·보험사 인수 가능성이 남아있어 신사업 확장에 대한 기대감을 계속 불어넣고 있다.
이런 가운데 KB-신한금융이 올해 분기배당을 정례화하고 그룹 회장이 직접 해외 IR에 나서며 '이름 알리기'에 한창인 만큼, 이들 행보가 글로벌 큰손의 '관심'을 되찾아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3월 취임한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일본에 이어 이달 네덜란드·프랑스·영국 등 유럽 출장길에 올랐으며,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지난달 인도네시아, 싱가포르를 방문해 기업설명회를 가졌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사의 경우 과거에는 '순익만 많이 내면 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은 주가 등을 고려해 글로벌 투자자 확보, 네트워크 확장 등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는 고스란히 CEO에게도 부담일 수밖에 없어 해외 투자 확보를 위한 금융그룹간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