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장기영 기자] 교보생명 재무적 투자자(FI)와 짜고 풋옵션(주식매수 청구권) 행사 가격을 부풀린 혐의를 받는 안진회계법인과 안진회계법인의 가치평가 보고서를 베낀 혐의를 받는 삼덕회계법인. 두 회계법인 회계사에 대해 엇갈린 법원의 항소심 유·무죄 판결은 풋옵션 분쟁에 마침표를 찍으려던 신창재 회장<사진>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신 회장은 대법원에서 안진회계법인 회계사에 대한 무죄 판결이 뒤집히길 기대하며 금융지주사 전환을 통한 돌파구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일 법조계와 보험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1-3형사부는 지난 13일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를 받는 삼덕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A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앞서 또 다른 회계법인인 안진회계법인의 가치평가 보고서를 베낀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A씨는 2심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A씨는 교보생명 FI 어펄마캐피탈(KLI인베스터스)의 의뢰로 풋옵션 행사 가격 관련 가치평가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직접 가치평가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안진회계법인의 가치평가 보고서를 자신이 작성한 것처럼 꾸민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여러 사정에 비춰볼 때 보고서는 주체 등에 허위 기재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피고인은 안진회계법인의 평가 가격을 원 단위까지 그대로 썼고 오류마저 따라 기재했다”고 판결 사유를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A씨의 건강상 문제와 범죄 전력이 없다는 점 등을 감안해 1심 형량을 낮췄다.
삼덕회계법인 회계사 A씨가 이 같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과 달리 A씨가 베낀 가치평가 보고서를 작성한 안진회계법인 회계사들은 앞서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등법원 제1형사부는 지난 2월 3일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교보생명 FI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이하 어피니티) 컨소시엄 관계자 2명, 안진회계법인 회계사 3명 등 5명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전부 무죄 판결을 유지했다.
피고인들은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신창재 회장을 상대로 풋옵션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주식 가격 산정을 부적절하게 공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안진회계법인을 통해 풋옵션 행사 가격을 주당 40만9000원으로 평가했는데, 이는 매입 원가인 주당 24만5000원의 2배 수준이어서 과대평가 논란이 일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은 양측의 공모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가치평가 업무에서 평가자와 의뢰인이 논의를 주고받는 것은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다”며 “평가 방법 등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보고서의 발행이 회계사들의 전문가적 판단 없이 이뤄졌다고 보는 것은 객관적 증거에 비춰 어긋난다”고 무죄 판결 배경을 밝혔다.
이에 따라 FI와 풋옵션 행사 가격을 공모한 혐의를 받는 ‘공모자’ 안진회계법인과 안진회계법인의 가치평가 보고서를 베낀 혐의를 받는 ‘표절자’ 삼덕회계법인에 대한 유·무죄 판결이 엇갈렸다.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사진 교보생명]](http://www.fetv.co.kr/data/photos/20230416/art_16818921392751_65bc08.jpg)
안진회계법인 회계사들에 대한 2심 유죄 판결로 풋옵션 분쟁에서 승기를 굳히려던 신창재 회장은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앞서 신 회장은 어피니티 컨소시엄을 비롯한 FI들이 제기한 국제중재소송에서 주식 매수 의무가 없다는 판정을 이끌어내 승기를 잡은 상태였다.
국제상업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는 2021년 9월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신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풋옵션 행사 관련 국제중재소송에 대해 주식 매수 의무가 없다며 기각을 결정했다. 중재판정부는 어피니티 측이 풋옵션을 행사한 2018년 10월이 아닌 2018년 6월 기준 공정시장가치(FMV)를 산출한 점을 들어 신 회장에게 주식 매수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국제중재재판소는 지난해 6월 다른 FI 어펄마캐피탈이 제기한 국제중재소송에 대해서도 동일한 판정을 했다.
신 회장은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에서 어피니티 컨소시엄 관계자와 안진회계법인 회계사에 대한 무죄 판결이 뒤집히길 기대하고 있다. 신 회장 측은 상고심에서 검찰이 보완된 증거를 제시하면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신 회장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면서 금융지주사 전환을 통한 풋옵션 분쟁 해법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교보생명은 내년 하반기 출범을 목표로 지난 2월부터 금융지주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보험사의 금융지주사 설립은 메리츠화재에 이어 두 번째이며, 생명보험업계에서는 처음이다.
금융지주사 설립은 교보생명이 보유한 자회사 주식과 현금 등을 분할해 금융지주사를 신설하고, 기존 교보생명 주주에게는 신설 금융지주사의 신주를 교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후 금융지주사는 유상증자를 통해 신주를 발행하고 납입금 대신 교보생명 주식을 현물로 출자받아 자회사로 편입할 예정이다.
교보생명은 금융지주사 설립 작업의 일환으로 이달 초 파빌리온자산운용 지분 100% 인수를 완료했다. 교보생명 자회사로 편입된 파빌리온자산운용은 교보AIM자산운용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앞서 안진회계법인 회계사에 대한 항소심 무죄 판결 당시 “어피니티 측의 법적 분쟁 유발로 가장 객관적인 풋옵션 가격을 평가받을 수 있는 기업공개(IPO) 기회가 지연된 만큼 이제라도 주요 주주의 역할에 맞게 적극 협조해 주길 바란다”며 “법원 판결과는 무관하게 금융지주사 전환, IPO 등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교보생명 지분 24%를 보유한 2대 주주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2018년 10월 IPO 지연에 반발해 풋옵션을 행사했다. 컨소시엄은 어피니티(9.05%), IMM PE(5.23%), 베어링 PE(5.23%), 싱가포르투자청(4.5%) 등 4개 투자자로 구성됐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을 1조2054억원에 매입하면서 2015년 9월 말까지 IPO가 이뤄지지 않으면 최대주주인 신 회장 개인에게 지분을 되팔 수 있는 풋옵션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