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오세정 기자] ‘유명무실(有名無實)’이라는 말이 있다.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없다’는 뜻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내용도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가 금융권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국정감사가 딱 그런 모습이다.
지난 12일 금융감독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감에선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날 정무위 오후 국감은 여야 정무위원 간 정면충돌로 인해 거듭 파행을 겪었다.
오후 감사 재개를 30분 앞두고 김진태 의원 등 한국당 정무위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한 성명서가 발단이 됐다.
한국당 의원 7명은 민병두 위원장의 비서관이었던 노태석씨가 금융위에 채용되는 과정에서 민 위원장의 부탁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민 위원장을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형사고발 하겠다”며 “민 위원장은 당장 정무위원장직에서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오후 국감 시작과 함께 잇따라 의사진행발언을 신청, 야당의 기자회견과 성명서 내용을 비판하고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위원들 간 입씨름이 계속되면서 국감 진행이 어려워지자 민 위원장은 감사중지를 선언했다.
국감은 이후 30여 분 만에 재개됐지만 여야는 일반증인과 참고인에 대한 심문을 마치고 다시 충돌했다. 이에 따라 민 위원장은 재차 감사를 중지해야 했다.
이날 정의당 추혜선 의원, 바른미래당 이태규‧유의동 의원 등은 “현재 가계부채, 부동산, 금리인상 등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금감원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하는 국감이 정치적 문제로 중단돼선 안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국감은 의원의 문책도, CEO의 대답도 없는 ‘공허한’ 국감이 될 전망이다. 해마다 단골 증인으로 국감장에 섰던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증인명단에서 줄줄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물론 국감에서 민간기업의 CEO를 부르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국감이 정부를 견제‧감시하기 위한 장치인 만큼 개별 회사에 집중하기 보다는 정부 정책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해의 국정을 돌아봐야 할 국감에서 금융권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힐 책임이 있는 금융사 CEO들이 모두 제외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올해 금융권은 은행들의 채용비리와 대출금리 조작 등으로 국민적 공분을 산 만큼 이에 대한 의원들의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이밖에도 예대금리와 관련해 가계대출을 통한 이자장사 논란, 근로자추천이사제, 은산분리 완화를 골자로 한 인터넷전문은행 특별법, 제3인터넷전문은행 인가 관련 등도 중요하게 다뤄질 현안으로 꼽혀왔다.
이런 금융권 주요 현안들은 쏙 뺀채 ‘정쟁’과 ‘이슈 몰이’만 하고 있는 국회의 모습은 앞으로 남은 국감 일정도 기대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번 국감이 국회의 송곳 지적에 금융권 주요 현안이 새롭게 조명받는 ‘생산적인 국감’이 아닌 ‘맹탕 국감’이 될까 우려스러운 이유다.
남아있는 정무위의 금융권 국감 일정은 오는 22일 KDB산업은행·IBK기업은행·예금보험공사‧서민금융진흥원 감사와 26일 금융위‧금감원 대상 금융부문 종합감사 등이다. 이 자리 만큼은 금융권 주요 현안이 부각되고 금융당국에 대한 견제‧감시가 제대로 이뤄지는 모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