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김진태 기자] 대한항공이 계속되는 왕산레저개발 매각 지연으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대한항공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추진하는 왕산레저개발 매각이 2년 넘게 지연되면서 대한항공의 현금이 지속적으로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과 맺은 자금보충약정으로 왕산레저개발의 새 주인을 찾을 때까지 대한항공이 자금을 계속 지원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다. 여기에 지속되는 고환율 때문에 아시아나항공의 자본잠식이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대한항공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왕산레저개발 이사회는 지난 17일 연 이사회에서 38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보통주 76만주를 신주 발행하는 것으로 1주당 액면가액은 5000원이다. 자금조달 목적은 운영자금으로 대한항공이 이번 증자에 참여했다.
대한항공이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한 왕산레저개발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은 올해만 두번째다. 왕산레저개발은 지난 2월에도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대한항공으로부터 92억원을 출자받았다. 대한항공이 올해에만 왕산레저개발에 130억원을 지원한 셈이다.
대한항공이 왕산레저개발에 현금지원을 시작한 것은 벌써 10년째다. 왕산레저개발이 지난 2011년 11월 세워진 이후 단 한번도 흑자를 내지 못하면서 설립된 다음해인 2012년 4월부터 대한항공이 운영자금 목적의 현금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왕산레저개발에 쏟은 현금은 지금까지 162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대한항공의 현금지원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매물로 내놓은 왕산레저개발의 매각이 두 차례 연속 불발로 끝난 가운데 마땅한 인수자도 없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2020년 11월 칸서스자산운용-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하 칸서스 컨소)으로 왕산레저개발을 1300억원에 처분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하지만 본협상 과정에서 양측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결국 지난해 4월 칸서스 컨소는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상실했다. 이어 진행된 2차 매각 절차에서 올해 6월 칸서스 컨소가 다시 한번 우상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주요 계약조건 등을 놓고 입장차만 확인하면서 다시 한번 왕산레저개발 매각이 불발로 끝났다.
대한항공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모양새지만 왕산레저개발에 대한 현금지원을 멈출 수도 없다. 대한항공이 2012년 왕산레저개발과 산업은행과의 3자간 자금보충약정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자금보충약정은 왕산레저개발이 산은에 빌린 돈을 갚을 여력이 없을 경우 대한항공이 상환자금을 보충해준다는 내용이다. 방식까지 ‘유증 참여’로 정했다.
왕산레저개발이 산은으로부터 차입한 금액은 총 799억원으로 지난달 기준 원리금 잔액은 444억원가량이다. 왕산레저개발을 매각해야만 자금보충 의무가 새주인으로 이관되는데 아직 인수자로 나선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재무구조 개선의 숙제를 안고 있는 대한항공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고환율로 인한 아시아나항공의 자본잠식 우려도 대한항공 측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요인이다. 자본잠식에 빠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것은 대한항공 입장에서 '독배'인 셈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자본금과 자본 총계는 각각 3720억원, 2046억원이다. 아직 자본잠식이 시작되진 않았다. 자본잠식은 적자로 인해 자본이 깎여 나가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고환율이다. 항공기의 리스료나 항공유를 달러로 결재하는 항공업계의 특성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환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상되는 아시아나항공의 환손실 규모는 35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달러 환율이 3분기에만 1298원에서 1439원으로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이 경우 환손실이 자본총계인 2046억원을 훌쩍 넘어서면서 완전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다.
고환율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고환율의 원인이 된 미국 금리 인상이 여전히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에서 지난달 기준금리를 0.75%포인트(p)의 올린 가운데 내달 초 다시 한번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내년 초 까지 미국의 금리인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원·달러 환율도 당분간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이 자본잠식에 빠져도 합병을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자본잠식에 빠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시장 장악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항공업계 전문가는 “자본잠식은 기업 재무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어서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큰 부담과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며 “하지만 중장기 관점에서는 시장 장악력이나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은 여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