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김수식 기자] 농심이 가뭄의 단비를 맞았다. 부진한 실적에 고심이 깊어진 가운데 원가부담에 인상한 라면가격으로 정부와 국민 눈치까지 보고 있는 상황이다. 비단 농심뿐 아니다. 라면업계가 전반적으로 흉흉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치솟았던 곡물 가격이 안정세를 찾는 듯 하더니 또다시 오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함께 뛰어오르는 환율도 문제다. 천정부지 오르는 환율에 전문가들은 환율 1500원도 염두해야 한다고 말한다.이런 상황에서 농심이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최근 야심차게 준비한 신제품 ‘라면왕김통깨’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농심은 지난달 출시한 라면왕김통깨가 한 달 만에 500만개 판매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라면 신제품의 인기 비결은 얼큰하고 고소한 국물에 있다는 분석이다. 농심 관계자는 “라면왕김통깨는 풍성한 김 플레이크와 볶음 참깨 토핑의 고소한 풍미가 가장 큰 특징”이라며, “김 특유의 감칠맛이 살아있는 국물맛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기존 라면과 차별화되는 고소한 맛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라면에 진심인 기자도 맛봤다. 기존 라면에서 볼 수 있던 건더기스프는 없었다. 대신 라면을 끓인 후 김 플레이크와 참깨가 고루 섞인 ‘후첨토핑’을 뿌렸다. 다소 밋밋해 보였던 라면 비주얼이 후첨토핑을 뿌리자 풍성해졌다. 냄새에서부터 고소함이 느껴졌다. 맛 역시 그 향 그대로 고소했다. 별미는 면을 다 먹은 후 만든 ‘김통깨 죽’이다.
농심에 따르면, 면을 다 먹은 뒤 남은 국물에 밥과 계란 등을 넣어 만드는 김통깨 죽도 인기 레시피로 사랑받고 있다. 온라인에는 “원래 국물은 다 못 먹는데, 감칠맛 덕분에 어느새 국물까지 완통깨 했다”, “계란 풀어 라면죽까지 먹으면 완벽”이라는 소비자들의 후기가 쏟아지고 있다.
초반 반응은 긍정적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농심의 대표제품 ‘신라면’처럼 베스트셀러 라면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쟁도 치열할 것이다. 최근 농심 뿐만 아니라, 팔도에서도 2012년 출시한 ‘남자라면’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새로운 국물라면 브랜드 ‘칼칼닭면’을 출시했다. 오뚜기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재배한 마늘과 제주산 돼지고기를 넣은 ‘제주라면'’을 내놨다. 진라면에 제주 음식점인 금악라면의 라면 레시피를 적용한 제품이다.
농심의 전략은 캐릭터를 활용한 소통이다. 라면왕을 꿈꾸는 청년 요리사 김통깨를 주제로 다양한 채널에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먼저 김종민을 모델로 한 광고를 공개하고, 김통깨 웹툰을 SNS에 게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엔 야구장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등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마케팅 활동으로 라면왕김통깨 ‘팬만들기’에 나섰다. 농심 관계자는 “앞으로도 색다른 맛에 신선한 마케팅을 더해 소비자 만족도를 높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는 라면왕김통깨가 최근 침체된 농심의 분위기를 바꿔 줄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앞서 농심은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섰다. 농심이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한 것은 1998년 2분기 이후 24년 만이다. 농심 관계자는 “국제 원자재 시세의 상승과 높아진 환율로 인해 원재료 구매 단가가 높아졌으며, 이외 유가 관련 물류비와 유틸리티 비용 등 제반 경영비용이 큰 폭으로 상승해 매출액이 늘었음에도 영업이익은 감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농심은 가격 인상 카드를 던졌다. 지난 15일부터 라면 주요 제품의 출고가격을 평균 11.3% 인상했다. 주요 제품의 인상폭은 출고가격 기준으로 신라면 10.9%, 너구리 9.9%, 새우깡 6.7%, 꿀꽈배기 5.9%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에서 봉지당 평균 736원에 판매되고 있는 신라면의 가격은 약 820원으로 올랐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정부는 식품업계에 물가안정을 위해 가격인상을 자제할 것을 요청하고, 또 가격을 인상한 식품기업 대표들을 중심으로 국정감사에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도 거들었다. 국민 10명 중 6명은 올해 하반기에 소비지출을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