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국내 은행들의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활용 마케팅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대형 은행을 중심으로 메타버스 제휴 파트너와 서비스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최근 큐브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메타버스의 보폭을 넓혔다. 글로벌 메타버스 '더 샌드박스' 안에 큐브엔터가 보유한 메타버스 공간인 K-빌리지(village)에서 다양한 마케팅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가상 브랜치'는 기본이다. 하나은행은 이 가상 지점에서 금융 서비스로 환전·금리 우대 쿠폰 등을 제공하며, 비금융 서비스로 하나은행이 후원하고 있는 축구, 골프 등 스포츠 콘텐츠를 제공한다. 연예 기획사 큐브엔터와 손잡은 만큼 볼거리 많은 이벤트도 공동으로 진행한다.
KB국민은행도 메타버스와 엔터테인먼트의 접목에 공들이고 있다. 먼저 인기 걸그룹 에스파(aespa)를 '메타버스 걸그룹'으로 재탄생시키고, 이들이 출연하는 메타버스 웹드라마를 만들었다. 역시 가상 지점 'KB 광야점'에서 국민은행 고객 각자의 아바타인 'ke(케이)'가 금융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눈다는 설정이다. 국민은행이 선택한 비금융 요소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가 중심이 된 '청춘 로맨스'다.
신한은행은 아예 메타버스 플랫폼을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신한과 나는 메타버스에서 만난다'라는 뜻의 '시나몬(Shinamon)'을 통해 다양한 금융, 비금융 재미를 담았다. 특히 '시나몬'하면 빠질 수 없는 '츄러스'를 활용한 아이디어가 눈에 띈다. 메타버스 공간 시나몬에 입장하면 가상의 재화 츄러스를 준다. 고객은 츄러스를 통해 적금, 청약, 펀드 등 가상의 상품에 가입할 수 있으며, 여러 금융 활동을 통해 츄러스 이자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대형 은행들이 앞다퉈 메타버스 공간에 나서는 건 '유저가 있는 플랫폼에 마케팅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장래 고객들과의 접점을 높여 이들의 성향을 타진하고, 브랜드 친밀감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웹 3.0시대 메타버스 가상공간에 참여함으로써 MZ세대 고객들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Z세대로 구성된 충성 팬덤을 잡기 위한 세계관 마케팅의 일환으로 이번 웹드라마를 기획했다"고 전했다.
한편 메타버스를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는 차원도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 자체가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데다 주된 이용자 연령층이 10~20대로 구매력이 크지 않지만, 메타버스 플랫폼이 성장 가능성이 있는 만큼 향후 어떻게 금융채널로 활용될 수 있을지 먼저 실험에 나선다는 뜻이다.
실제 신한은행이 시나몬에 구현한 츄러스, 가상의 금융상품 등은 2차 베타 서비스에서 선보인 것이다. 1차 테스트 때의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더욱 고도화한 결과물이다. 신한은행은 이번 2차 베타 서비스에서 선보인 주택청약종합저축 상품의 경우, 시나몬 플랫폼이 정식으로 문을 열 때 청약 당첨자에게 가상의 개인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현재 준비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Roblox)'를 활용해 금융 서비스의 적용 가능성에 대한 실험을 마쳤다. 로블록스 안에 KB금융타운 베타버전을 만들어 가상 영업점과 금융을 접목한 게임을 출시해 국민은행이 실제 운영하는 화상상담 서비스, 부동산 대출, 신용등급 산정 등이 로블록스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점검했다.
로블록스는 단순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는 탓에 성인 눈높이에선 게임의 퀄리티가 조악하다. 하지만 몇몇 게임의 경우 10대 초중반 유저들의 활성 이용자(AU) 수가 10만 여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주된 유저가 알파세대(2011년 이후 출생)인 만큼 현재 활성화된 메타버스 플랫폼에 비해 장기적인 로드맵을 갖고 테스트베드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박민주 한양증권 연구원은 "현재 제페토, 로블록스 등 수많은 유저를 갖고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의 경우 여전히 유저들이 경제적 가치를 재창조하고 이차적 거래를 수반하기에는 제한적인 상황이지만, 로블록스와 제페토의 가치는 각각 약 24조원, 46조원(네이버)"이라며 "유저가 경제가치를 창출하는 진짜 메타버스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