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김현호 기자] 유럽연합(EU)이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액화천연가스(LNG)선 독점을 우려한 결과다. ‘빅딜’ 무산이 현실화 될 것이란 위기감이 높아졌는데 현대중공업그룹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LNG선 발주량이 크게 확대돼 EU의 요구 조건을 들어줄 필요가 없고 조선산업이 회복 국면에 진입해 인수 명분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http://www.fetv.co.kr/data/photos/20211250/art_16394410362874_9a4f99.jpg)
◆빅딜 무산되나...“EU, 현대-대우 인수합병 거부방침”=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매출이 발생하는 한국과 중국, 일본, EU, 싱가포르 등 6개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 없이 사업 진행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19년 10월 카자흐스탄을 시작으로 싱가포르와 중국에서 지난해 승인을 받았지만 3개국에선 여전히 심사가 진행 중이다. 가장 높은 벽으로 분류되는 EU에서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된 만큼 인수합병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양사의 기업결합을 거부하기로 했다. 로이터는 “독점 우려 완화를 위한 구제조치를 제출하라 했는데 한국조선해양이 건조 기술 이전 및 조선소 일부 매각 등의 방안을 제시했지만 반(反)독점 당국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했다. 집행위는 글로벌 기업의 합병 심사를 결정하는 기관으로 지난 2019년 12월부터 양사의 합병 심사를 진행해왔다.
2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EU의 심사는 앞서 세 번이나 유예됐고 지난달 말부터 다시 시작했다. 코로나19 여파가 반영된 것이지만 EU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는 LNG선 독점 우려 때문이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발주된 LNG선은 55척이다. 이 가운데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LNG선 수주량은 각각 26척과 7척이다. 전체 발주량 가운데 양사 점유율이 60%인 셈이다.
집행위는 독과점을 이유로 합병 승인을 거부한 전례도 있다. 지난해 합병을 추진하던 이탈리아의 핀칸티에리와 프랑스 아틀란틱스조선소가 대표적이다. 양사는 전 세계 크루즈 분야 점유율 1, 3위 기업이다. 크루즈 위주로 제조하는 조선사라 현대-대우 심사와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당시 집행위는 선주들을 고려해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을 독점하면 가격 협상에 있어 선주들이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합병 조건은 ‘점유율 낮춰라’…발주량 늘어나는데 굳이?=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기업결합 심사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통과되지 않으면 새로운 계획을 세워 후속조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양사가 LNG선 점유율을 낮추려면 수주량을 줄이면 되지만 이는 현실성이 떨어지고 산업은행과 달리 현대중공업그룹은 인수 무산에도 큰 문제가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EU가 합병 승인을 내더라도 조건부 승인을 전제조건으로 내걸 것”이라며 “특히 LNG선 점유율을 낮추라고 요구할 텐데 이는 양사 모두에 악재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대중공업그룹 입장에선 지배구조 개편과 현대중공업 상장을 마친 상태라 적자 기업인 대우조선해양을 굳이 인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달까지 LNG선 누적 발주량은 전년 동기대비 34척 증가한 63척이다. 올해 기저효과로 내년 발주량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있지만 친환경 이슈로 전망은 밝은 상황이다. 굳이 EU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선을 포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재 LNG선 가격은 척당 2억700만달러(약 2440억원)로 5년 만에 2억 달러를 넘겼고 역대 최고가였던 2억750만 달러 돌파도 눈앞에 뒀다.
한영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대형 LNG선 수주잔고가 역사적 최고 수준이라 수급 우려가 이해되지만 수요는 내년에도 매우 견고한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LNG선 수요는 선박의 수급보다는 천연가스전 개발 프로젝트에 영향을 받는데 현재 천연가스 가격이 강세이고 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석탄 수요 감소를 감안하면 천연가스 개발 수요는 견고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에 따라 선박들은 2008년 대비 탄소 배출량을 2030년 40%, 2050년에는 70%까지 감축해야 한다. LNG는 매탄을 배출해 완벽한 친환경 연료는 아니다. 탄소배출 제로(0)를 위해선 수소와 암모니아 사용이 필요한데 아직 주연료써 상용화가 이뤄지지 않아 LNG선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업계에 따르면 LNG는 사용시 미세먼지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중유(HFO) 대비 이산화탄소를 5~30%가량 줄일 수 있다.
경영 상황도 우호적이다. 산업은행은 2019년 3월, 조선산업의 사업경쟁력 제고를 위해 보유하고 있는 주식 전부를 한국조선해양에 현물출자하고 한국조선해양의 신주를 취득하는 조건으로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이 탄생한 배경도 대우조선해양을 자회사로 세우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조선업이 장기불황에서 벗어나 호황을 맞이하면서 제고 명분이 희석됐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EU에서 공식적인 입장이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심사 결과에 대한 예측은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시장은 자동차와 같이 양산형이 아니라 주문자 생산 방식에 입찰 구조 형식이며 선사에 맞는 옵션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독점이 어려운 구조”라며 “유럽연합 경쟁당국도 조건 없는 승인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