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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사외이사들 '거수기' 여전

상반기 안건 통과율 95%...독립성·책임감 높여야

 

[FETV=이가람 기자] 초대형 투자은행(IB)의 사외이사들이 올해 상반기(1∼6월) 평균 3500만원이 넘는 보수를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보수를 받는 만큼 독립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경영권을 감시해야 하지만 반대 표를 던진 안건은 단 5%에 불과했다. 이에 그동안 지적을 받았던 ‘거수기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14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올 상반기 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삼성증권·KB증권 등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도합 55번의 이사회를 열고 총 152개의 안건을 다뤘다. 이 가운데 144개(94.8%)의 안건이 가결됐다. 보류(4.6%)와 부결(0.6%)은 각각 7건과 1건이었다. 이조차도 만장일치로 처리됐다. 이 기간 감사위원을 제외한 사외이사들이 받아간 평균 보수액은 한 사람당 3525만원에 달했다.

 

사외이사는 경영진에 속하지 않는 이사회 구성원이다. 통상 외부 전문가가 영입되며, 대주주와 경영진들의 무리한 의사 결정과 독단 경영활동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사외이사의 안건 찬성률을 보면 경영권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증권사별로 살펴보면 미래에셋증권이 11번의 이사회를 열고 32개의 안건을 다뤘다. 이 중 단 1건만이 전원 부결 의견을 이끌어냈다. 한국투자증권(16회·34건)과 삼성증권(7회·28건) 사외이사들의 찬성률은 안건의 경중과 상관없이 100%였다. 12번의 이사회를 개최하고 27개의 이슈를 처리한 NH투자증권의 경우 보류건(5개)이 가장 많았다.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승인과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모펀드 분쟁조정위원회 조정안 수용 여부와 관련된 의안에 신중하게 접근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일하게 KB증권(9회·31건)에는 과반 찬성 속에서도 반대를 외치거나 기권 의사를 밝힌 사외이사들이 있었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사외이사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경영진 견제,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 제시, 독자적 영향력 행사,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라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전직 관료 출신을 영입해 로비스트로 활용한다면 이사회의 거중기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외이사의 독립성 확보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외이사가 연임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은 4명 중 2명, 한국투자증권은 6명 중 5명, NH투자증권은 5명 중 1명이 연임에 성공했다. KB증권의 사외이사 5명은 모두가 연임자다. 삼성증권에만 연임한 사외이사가 없었다.

 

실제로 수년간 증권가를 멍들게 했던 대규모 펀드 사고가 연달아 터졌을 때에도 경영진의 미흡한 내부통제에 대한 비판과 함께 사외이사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지난해 금융산업노조가 펀드 사태에 연루된 금융회사의 최근 3년간 이사회 안건을 조사한 결과, 찬반 투표를 거친 안건 중 수정 없이 통과된 사례의 비율이 97%를 넘어섰다. 사외이사들이 검토하기로 밝힌 안건의 비율은 1%도 채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들은 투명한 지배구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사외이사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등을 토대로 규정한 정관에 의거해 독립적인 직무수행을 하고 있다”며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 중에 선임하는 등 꾸준히 환경·사화·지배구조(ESG) 경영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 금융권 사외이사도 “일반적으로 이사회 개최 전 문제가 될 만한 안건은 사전 협의를 거치면서 걸러낸다”며 “이때 의견이 모아지지 않은 안건이 있으면 상정을 미뤄 사외이사라는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 일각에서는 경영진이 이사회 관할을 독점할 경우 처벌, 감독형 이사회 채택, 사외이사 책임감 부각 등 제도적·인지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기업지배구조연구소 관계자는 “우리나라보다 약 50년 앞서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한 미국에서는 경영판단의 원칙에 의거해 사외이사가 독립적인 위치에서 판단한 것인지를 따져 유·무죄를 판단하고 있다”며 “입법화까지는 불가능하겠지만 사외이사가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경우 책임을 부과하거나, 사외이사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지 인식한다면 사외이사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