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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현장에서]가짜뉴스와 평지풍파 여론

[FETV=최남주 기자] '평지풍파'라는 옛말이 있다. 고요한 땅에 바람과 물결을 일으킨다는 사자성어로, 공연한 일을 만들어 일을 어렵고 시끄럽게 만드는 경우를 이른다. 과거에는 보다 '물리적인 현상'에 가까웠던 이 단어는 미디어와 인터넷이 발달하는 가운데 대중의 의견, 즉 '여론' 형성과정에 자주 쓰이곤 한다. '냄비 정신'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 국민 정서와 맞물린 '여론의 평지풍파'는 개인과 기업의 안녕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곤 한다.

 

미디어가 발달하며 불특정 다수를 향해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신문과 방송은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떤 신문과 방송을 보느냐에 따라 같은 사안에 대한 개인들의 성향이 달라지기도 했으나, 대중의 의견들은 사안별로 유사한 스탠스를 향해 기우는 편이다. 2010년을 전후하며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가운데,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온라인 상에서의 여론 형성이 많아졌다. 과거와는 달리 '어디선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의견들이 거대한 여론을 형성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평지풍파'라는 단어가 다분히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듯, 이러한 '평지풍파 여론'에 의한 피해 사례들을 몇 가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개인에 대한 사례야 수많은 악플들과 그에 따른 여러 공인들의 안타까운 소식들에서 수없이 찾아볼 수 있지만, 기업 역시 이를 통해 존폐의 문제까지 이른 경우들이 있다.

 

미디어를 통한 평지풍파 여론으로는 '소비자 고발'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고통받은 황토팩 전문기업 '참토원'의 사례가 있다. 2005년 배우 故 김영애 씨가 론칭한 참토원 황토팩은 홈쇼핑 완판 행진을 거듭한 끝에 2년 만에 매출 1,500억을 돌파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공인이었던 배우가 직접 홈쇼핑에 출연해 제품을 설명하고, 사용후기들도 좋았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2007년 방송된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은 참토원에 재기불능의 피해를 안겨줬다. 제품에서 중금속(쇳가루)가 검출되었고, 이는 제품 분쇄기 안에 있는 쇠구슬이 마모돼 발생한 것이라는 것. 방송이 나간 순간부터 당연히 매출은 급락했고, 회사에는 비상이 걸렸다.

 

식약청의 조사 결과 검출된 쇳가루는 황토에 원래 포함된 자철석 성분으로 인체에 무해하다는 결과가 나왔으나, 이미 평지풍파를 일으킨 여론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당시 김영애 씨는 해당 프로그램 측에 공개실험을 통해 유해 여부를 실험해보자는 제안까지 내놓았으나 거절당했고, 기자회견과 여러 기사들이 나왔지만 당시만 해도 인터넷 여론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못한 시대라 기업의 피해는 커져만 갔다.

 

뒤늦게 방송사 측과 소송을 진행했으나 피해액의 10%에도 미치지 못한 금액을 보상받았을 뿐이었다. 결국 김영애 씨는 참토원 사업을 접었고, 이혼과 함께 병력이 있던 췌장암이 재발해 2017년 생을 마감했다. 참토원 역시 폐업에 가깝게 몰락해 현재는 기존에 만들었던 황토 비누 제품만이 몇몇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상황이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며 많은 정보가 오가는 가운데 많은 '자정적 기능'이 활성화되었지만, 가짜뉴스들로 인한 평지풍파 여론은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누구나 정보를 게시하고 볼 수 있다는 개방성이 독이 된 케이스로 반려견 사료기업 '셀트루먼트'가 있다. 2016년 사료브랜드 '디어마이펫'을 론칭하며 반려견들이 해당 사료만을 찾는 '기호성 영상 meme'으로 스타덤에 오른 이 기업은 출시 2달 만에 월간(11월) 사료판매량 1위에 오른다.

 

기호성이 높은 고기와 반려견 몸에 좋다는 성분들을 다수 함유했다는 마케팅과 함께 온라인 자사몰을 이용한 D2C 판매로 소비자 접근성도 쉬웠기에 나타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1주일 만인 12월 초 이 회사는 지옥에 발을 내딛게 된다.

 

애정사료(디어마이펫의 사료 제품명)를 먹고 반려견이 죽었다는 SNS 게시물이 올라온 것이다. 자세히 보면 '반려견이 수술 과정에서 탈수 증상이 났다'는 것이라 100% 정확한 인과관계가 보이진 않았지만 다분히 감성적 호소체로 쓴 이 게시물에 인터넷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됐고, 뒤이어 '반려견이 설사와 혈변을 하다 죽었다'는 2~3건의 유사 게시물들이 더 올라오며 논란에 불을 붙였다.

 

스타트업 수준의 작은 회사였던 셀트루먼트는 갑작스런 여론 변화에 놀라 사과문을 발표했고 부작용(설사, 혈변 등)을 일으킨 반려견주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기재했다. 하지만, 오히려 보상금을 노린 블랙컨슈머들에 의해 인터넷 상에는 '디어마이펫' 브랜드과 제품에 대한 악성 루머들이 줄을 이었다.

 

성분검사 결과 아무런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았고, 고단백 사료를 갑작스레 섭취하는 반려견들에게 설사와 혈변은 자주 일어나는 증상이었지만 한번 기울어진 여론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셀트루먼트는 6개월 만에 폐업에 이르렀고, 너무도 억울했던 대표는 초기 '반려견 사망 게시글'들을 올린 네티즌들에 대해 민사 소송을 진행하기에 이른다. 놀랍게도 게시자들 모두 소송에서 패소해 제품의 책임이 없다는 것이 법적으로 밝혀지기도 했으나 이미 해당 기업과 브랜드는 사라진 뒤였다.

 

21세기가 들어선지도 20년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앞선 10년은 미디어, 후의 10년은 인터넷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정확한 사실 판단 없이 게시되는 '가짜뉴스'들의 영향력이 그것이다. 개인을 넘어 기업의 흥망(興亡)까지 좌우하는 사례들을 보며 새삼 '평지풍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다.

 

최근 들어, 한쪽으로 갑작스레 기우는 여론들에 대한 '중립기어' 의견들이 늘어나며 '평지풍파'에 대한 보다 높은 수준의 자정작용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다가올 10년, 보다 성숙한 여론들이 형성되는 대한민국 사회를 기대하며, 억울함 속에 사라져간 기업들과 돌아가신 '국민 어머니' 대(大)배우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