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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인문학] 먹어 치우는 존재에서 금욕주의 인간으로

음식과 성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저자 로널드 르블랑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와 레프 톨스토이(1828~1910)가 활동했던 19세기가 러시아 문학사에 있어 가장 빛나는 시대였다.

두 위대한 작가의 작품과 그 작품에 담긴 사상은 이후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문학과 학문에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잡고 있다.

러시아의 문화와 예술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음식과 성'은 이렇듯 인류 지성사에 뚜렷하게 족적을 남긴 두 위대한 작가를 중심으로 19세기 러시아 소설을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음식’과 ‘성’에 대한 욕망과 죄의식을 중심으로 하여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작품이 지닌 대조적인 측면을 드러냄으로써 두 대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19세기 이후의 러시아 문학, 나아가 전 세계의 문학을 분석할 수 있는 중요한 틀을 제공하고 있다.

흔히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작품은 심오한 철학적·도덕적·종교적·사회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걸작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로널드 르블랑은 이 두 위대한 작가이자 사상가의 작품에서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만큼이나 음식에 대한 관심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레비스트로스, 부르디외, 바르트 등 여러 사상가와 문학 비평가들이 음식 모티프와 문학작품 속의 식사 묘사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코드들을 분석했는데,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문학 속 인물이 음식을 먹는 태도와 그가 먹는 음식을 통해 그의 성격이나 심리, 그가 살고 있는 세계와 문화적 가치에 대해 읽을 수 있다는 점, 곧 음식이 문학 비평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 드러났다고 강조한다.

또 한 가지 이 책에서 ‘음식’과 함께 작품 분석의 중심으로 삼는 키워드는 ‘성’이다. ‘음식’과 ‘성’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개체 유지를 위한 음식 섭취, 종족 보존을 위한 생식 행위)로, 식욕과 성욕은 사회적·문화적·생물학적으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식욕과 성욕을 이성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 비천한 ‘욕망’으로 보았던 고대 그리스와 중세를 거쳐 현대의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에 이르기까지 성욕과 식욕은 동일선상에 놓여 왔으며, 일상생활이나 문학작품에서도 성적 행위는 흔히 먹는 행위로 표현되어 왔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 하에서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작품 속에서 식욕과 성욕이 어떻게 묘사되고,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 자본주의적 경쟁과 먹어치우는 존재로서의 인간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 백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에서 보여지는 음식 섭취는 맛, 즐거움, 영양 공급의 차원이 아니라, 폭력, 공격성, 지배의 차원으로 드러난다.

고기는 폭력적으로 공격하고 소비해야 할 것으로 다루어지며, 이와 목구멍처럼 음식물을 씹어 삼키는 기관에 독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마찬가지로 성교라는 신체적 행동은 에로틱한 체험보다는 폭력적인 행위로, 상호간의 성행위보다는 성폭력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로널드 르블랑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먹는 행위와 성적 행위를 이렇듯 폭력적인 형태를 띠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곧 자본주의적 경쟁이 치열하게 일어나는 다윈의 세계를 사회심리학적인 관점에서 그려낸 것이라고 말한다.

무자비한 사회경제적 동물로서 먹어치우지 않으면 먹히는 상황에 처한 인간은 잔인하고 공격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톨스토이, 관능적 인간에서 금욕주의로

반면 톨스토이의 작품 속 인물들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와는 달리 ‘먹어 치우기’보다는 ‘맛을 보는’ 경향을 지닌 것으로 분석된다.

톨스토이의 작품 속 남성 인물들은 감각적 즐거움 때문에 음식과 성에 탐닉하는 경향이 있으며, 톨스토이 작품 속에서 여자와 음식은 남성을 유혹하고, 정신적 실현으로만 성취 가능한 영혼의 만족 대신 일시적인 육체적 감각의 희열만을 제공하는 상징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톨스토이의 후기 작품 중 하나인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먹는 행위’와 ‘성적 행위’ 사이의 이러한 연관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작품들이 탐닉하는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톨스토이는 말년에 엄격한 기독교적 금욕주의를 신봉하게 된다. 식욕의 측면에서나 성욕의 측면에서나 강한 본능적 충동을 지니고 있었던 동시에 도덕적 자기 완성에 대한 집착 또한 강했던 톨스토이는 점차 반쾌락주의와 반에피쿠로스적 철학에 깊이 침잠했고, 성욕뿐만 아니라 미각과 위(胃)의 쾌락까지도 포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로널드 르블랑은 19세기 러시아 소설들에 나타난 음식 표상 분석을 통해 러시아 근대화 이전의, 개인주의와 차별보다 공동체주의와 친교의 인간관계가 일반적이었다고 여겨지던 목가적 황금시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음식과 전통적인 연회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위선과 불화로 가득한 도심에서의 유럽풍 식사가 아니라, 사랑과 우정이 넘치는 가족 친구들과의 러시아식 식사. 19세기의 러시아 소설들은 바로 이러한 환상들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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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전문기자/문화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