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이건혁 기자]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으로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기대와 달리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경쟁사인 흥국생명의 강경 반발과 국민연금 변수 등에 직면하면서다.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는 이슈와 관련된 언급을 자제하며 ‘신중모드’에 들어갔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는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적격성 심사를 준비하고 있다. 다만 완전 인수까지는 변수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당초 경쟁자였던 흥국생명의 반발이 쉽게 잦아들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흥국생명은 이지스자산운용 우선협상대상자로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 이름이 발표된 다음 날인 9일 입장문을 통해 “이번 입찰에서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법적 대응을 포함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매각주간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수수료 극대화를 위해 프로그래시브 딜을 제안했다는 주장이다.
흥국생명이 가처분 신청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한 탓에 이지스자산운용 역시 대주주 적격성 심사 절차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흥국생명은 이지스자산운용과 모건스탠리 등 관계자들을 고발하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프로그래시브 딜 자체의 적법성보다는, 흥국생명이 배제된 상태에서 논의가 진행된 점을 문제 삼는 시각도 있다. 흥국생명이 이번 인수전에 강하게 반발하는 배경 역시 이 같은 사전 조율 과정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흥국생명 관계자도 “사전에 프로그래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우리 측 딜을 상대방에게 전달해 가격을 높인 점이 잘못된 것”이라며 “과정을 알고 있었다면 가격을 더 높이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흥국생명은 이지스자산운용 인수를 통해 사업적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전략적으로 인수전에 참여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을 통해 안정적인 실물자산 투자가 이뤄지면 흥국생명 자산 운용 안정성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흥국생명은 본입찰 단계에서 제시 금액을 1조원까지 높이며 경쟁 구도에서 우위를 점했다.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고 있는 강경한 태도도 사업 확장에 대한 의지가 반영된 행보로 풀이된다.
국민연금도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10일 투자위원회를 열고 이지스자산운용에 위탁한 자금의 회수 방안을 논의했다. 국민연금이 이지스자산운용에 위탁한 자산 규모는 2조~3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매각 과정에서 펀드 관련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다고 판단해 자금 회수는 물론 법적 대응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 내부에서는 최대한 대응 수위를 낮추려는 기류가 감지된다. 적극적인 입장 표명보다는 논란이 확산되지 않도록 상황 관리를 우선시하는 분위기다. 불필요한 공방이 이어질 경우 인수 절차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대주주 적격성 심사 준비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흥국생명 입장문을 정면으로 반박했던 것과는 정반대 양상이다. 당시만 해도 힐하우스는 ‘중국 자본’이라는 프레임을 의식한 듯 ‘싱가포르 회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준과 규정을 철저히 준수했다”고 반박했다.
공식적인 언급은 자제하고 있지만 힐하우스 역시 이번 인수전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힐하우스는 앞서 일본의 주거·호텔 개발 및 자산운용 플랫폼인 삼티홀딩스를 인수했다. 이번 거래에서도 삼티 AMC(자산운용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부동산 분야에 강점을 지닌 자산운용사들을 잇달아 확보하며 아시아 전역에서 부동산 자산운용 플랫폼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각 회사마다 명확한 전략을 가지고 인수전에 참여한 만큼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며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한 때 주춤했지만 지난해 이지스자산운용의 영업이익은 회복중이다. 2019년 305억원 수준이었던 영업이익은 2021년 1144억원, 2022년 1728억원까지 증가했다. 2023년 568억원까지 내려앉았지만 지난해 1132억원으로 반등했다.
특히 이지스자산운용은 이지스 아시아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 487억원 수준으로 이지스자산운용의 종속기업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다. 2023년 66억원 수준이었던 당기순이익도 지난해 242억원으로 늘어나며 성장세도 뚜렷하다. 집계되지 않은 대규모 기관 투자자들과의 네트워크도 감안하면 아시아 진출 전략을 가진 힐하우스에게는 매력적인 회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