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김주영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해외 각국마다 상이하고 복잡한 규제를 한 눈에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출 지원 플랫폼의 마련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해외 인허가 대응, 시장 분석, 규제 협의 기능 등 정부가 나서 지원하면 해외 시장 공략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28일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다수의 관계자는 해외 진출을 더욱 가속화하려면 이를 지원하는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동일한 입장을 내놨다. 의약품 특성상 수출국의 보건당국 허가가 반드시 필요한 가운데 각국의 상이한 절차와 제도를 기업이 각각 대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기업이 대응해야 하는 해외 지역별 인허가와 수출 대응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체계화하면 그만큼 비용 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시장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파마(Evaluate Pharma)의 ‘World Preview 2024’에 따르면 전 세계 전문의약품 시장은 2028년까지 약 1조7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항암제와 면역질환 치료제 분야는 연평균 11~14%에 달하는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시장 규모. [자료 IQVIA]](http://www.fetv.co.kr/data/photos/20250522/art_17482179437776_58ded3.png)
바이오의약품 부문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바이오협회가 2024년 발간한 ‘바이오산업 주요 통계’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2023년 약 5600억 달러 규모로 전체 의약품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연평균 9%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항암제 시장이 2023년 2230억 달러에서 2028년 4090억 달러로 확대되고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시장도 연평균 4% 수준의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듯 국내 시장만으로는 회수하기 어려운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비를 감안할 때 고성장·고수익이 가능한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은 사실상 필수다. 하지만 업계는 글로벌 시장이 급속도로 확장됨에 따라 기업 차원에서 개별로 대응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현재 국내에는 식약처, 보건산업진흥원, 코트라 등에서 일부 정보나 지원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들 기관의 기능은 흩어져 있고 수출 전략 수립에 필요한 정보 접근성과 실효성 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는 국가별 인허가 대응, 시장 분석, 규제 협의 기능을 통합한 정부 주도의 수출 지원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컨트롤 타워의 역할로서 업계는 수출 지원 플랫폼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각국 인허가 정보와 수출 전략을 기업에 제공하는 한편 주요국 규제기관과의 협의 창구 역할까지 수행하는 조직 설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해외 규제기관과의 협의 창구 역할도 포함된다. 상호인정제도(Mutual Recognition Agreement, MRA) 확대와 같이 국가 간 제도 협력은 결국 정부 간 교섭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공식 기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상호인정제도란 한 국가에서 인허가를 받은 의약품이나 품질검사 결과를 다른 국가에서도 동일하게 인정해주는 체계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 이슈 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영국, 미국, 캐나다 등 주요국들은 이미 서로 간의 의약품 규제 신뢰를 바탕으로 상호인정과 공동심사를 확대하고 있다.
영국 의약품규제청(MHRA)은 2024년부터 ‘국제인정절차(IRP)’를 도입해 미국, 일본, 유럽 등 신뢰 가능한 규제기관이 승인한 의약품에 대해 신속 허가를 가능하게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프로젝트 오르비스(Project Orbis)’를 통해 호주, 싱가포르, 스위스 등 8개국과 함께 혁신 항암제에 대한 임상 데이터를 동시에 검토하며 허가 기간을 단축하고 있다.
또한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은 의약품 제조소에 대한 GMP 검사도 공동으로 진행하는 단일검사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 중이다. 동일한 생산시설에 대해 여러 국가가 중복 검사하지 않고 결과를 상호 인정함으로써 기업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글로벌 공급망 관리를 효율화하고 있다.
2024년 우리나라는 싱가포르와 의약품 GMP 상호인정 협정을 체결해 식약처가 발급한 적합 판정서가 그대로 통용되도록 했다. 업계는 이러한 협력 사례를 발판 삼아 미국, 유럽 등 주요국과의 협력도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상호인정 제도와 함께 업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또 하나의 정책 과제는 ‘이중가격제도’ 도입이다. 이중가격제도는 실제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 높게 책정해서 해외 시장에 '참조가격'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이러한 제도가 아닌 실제 가격으로 참조가격을 제공하다보니 해외 경쟁사와 가격 협상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업계는 호소한다.
국내에서 책정된 의약품 약가는 여러 국가에서 해외 신약 가격을 산정할 때 참조 기준으로 활용된다. 이 때문에 국내 약가가 낮게 설정되면 제품이 수출됐을 때도 동일하게 낮은 가격이 책정되는 구조다. 이로 인해 국산 신약의 글로벌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고 기술 수출이나 라이선싱 협상에서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코닉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자큐보’는 10년에 걸쳐 약 500억원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다. 그러나 자큐보는 2024년 10월 건강보험 급여 기준으로 1정당 911원의 약가로 등재됐다.
대웅제약의 ‘펙수클루’는 939원, HK이노엔의 ‘케이캡’은 약 1300원선에 책정돼 있다. 같은 계열의 일본 제품인 ‘보노프라잔’이 현지에서 약 2600원 수준의 약가로 등재된 것과 비교하면 국내 제품 약가는 절반 이하다. 그만큼 제품력이 동일하더라도 국내 제약사의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국내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품력은 세계 어느 나라 기업 못지않은데 나라별로 제도가 달라 수출 문턱이 높다”며 “이제는 정부가 중심이 돼서 기업들이 각자 외국 제도 찾아 헤매지 않도록 정보를 통합해주고 주요국과 상호인정 체계를 맺는 실질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각국의 인허가 제도를 정리해서 공유할 수 있는 수출 지원 플랫폼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면서 “이런 시스템이 구축되면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복잡한 해외 인허가 제도를 대응하지 않아도 돼 진출 속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