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양대규 기자] MBK파트너스(이하 MBK)·영풍과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에 '집중투표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고려아연은 다음달 예정인 임시주주총회 때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집중투표제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방안으로 제시한 제도이기도 하다.
MBK 측은 이에 대해 '꼼수'라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집중투표제를 악용하려 한다'는 이유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23일 고려아연은 임시 주주총회 1-1호 의안으로 집중투표제를 확정했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 단체나 금융당국, 정치권 등에서 대표적인 소수주주 보호제도로 적극 권장되고 있다. 정부는 집중투표제가 기업 지배구조를 나타내는 핵심 정보라고 판단,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사들에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를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기존의 단순 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할 경우 과반의 주식을 소유한 대주주의 의사에 따라 모든 이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집중투표 방식을 이용하면 소수주주의 의결권을 집중해 이들이 추천한 이사를 선임함으로써 모든 이사가 대주주의 의사대로 선임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MBK 측은 집중투표제의 취지와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하지만 이번에는 안된다는 주장을 했다.
MBK·영풍 측은 "표 대결 판세에서 불리한 최윤범 회장이 주주간 분쟁 상황을 지속시키고 어떻게 하든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집중투표제를 악용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MBK는 "소수주주라고 볼 수 없는 최 회장이 의결권 기준 지분 격차가 더 벌어진 상황에서 자신에게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집중투표제를 활용하려 한다"며 "겉으로는 주주 보호를 운운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본인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제도를 남용하는 것과 동일한 행태"라고 밝혔다.
이에 고려아연 측은 MBK 측의 반대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은 "집중투표제를 통해 특히 높은 지분율을 가진 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고, 소수주주 연합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이사를 내세울 수도 있어 이사회 다양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며 소액주주단체들은 물론 시장에서도 집중투표제 도입에 적극 찬성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MBK·영풍은 물론이고 연기금과 기관, 소액주주 단체 등 소수주주가 추천한 이사 역시 선임이 가능해 이사회의 다양성이 한층 강화된다"며 "이는 현행 이사회와 최윤범 회장 등 현경영진의 기득권을 상당수 내려놓는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유미개발의 주주제안에 따른 집중투표제 도입 청구 절차는 법적으로나 실무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MBK가 불만부터 제기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조건부 집중투표 청구(정지조건부 주주제안)는 다수 사례가 이미 실행됐을 정도로 선례가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고려아연 측은 설명했다.
업계 일부에서는 제도가 도입됐을 경우 다른 주주의 반대로 고려아연을 인수하는 게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만약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소수주주의 목소리가 커지면 투자금 회수 등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MBK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단체나 시민단체는 물론 금융당국과 정치권 등에서 대표적인 소수주주 보호제도로 적극 권장해 온 만큼 반대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MBK 측 이외 주주들도 집중투표제 도입에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 정부는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집중투표제 도입을 지속적으로 권장해 오고 있다. 정부는 상장사의 지배구조에 대한 정보를 주주 등 관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데, 해당 보고서에 명시해야 하는 15개 핵심 지표에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가 포함돼 있다.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가 기업지배구조의 핵심적인 정보로 많은 주주들이 이를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 때문이다.
지난 2019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에 공개를 의무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적어도 이때부터 집중투표제 도입을 공식 권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소수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고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 중으로, 법 개정을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업계는 MBK가 국내 대기업 전반에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워 M&A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집중투표제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을 거라는 분석이 많다. 다만 고려아연 인수 건처럼 MBK가 대주주가 되면, 매각을 계획할 경우 오히려 소수주주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분이 적을 때는 사모펀드에 유리할 수 있는 제도다. 반대로 사모펀드가 1대 주주로 지분을 갖고 있을 경우 되레 불편한 제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