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입행 후 첫째 아이를 출산했을 때 50만원 격려금을 받았는데, 당시 같은 기준이면 삼성전자에서는 500만원을 준다는 말을 듣고 '현타'가 온 적이 있다. 이런 은행권 전례에 비춰볼 때 최근 국민은행의 결정, 정말 대단하다고 본다"
이달 2일 한 특수은행 관계자와 식사를 하다가 문득 튀어나온 '출산장려금' 얘기다. 칭찬에 인색한 금융권에서 다른 은행을 향해 '대단하다'는 단어가 이때 나왔다.
지난달 26일 KB국민은행 노사는 출산장려금을 최대 2000만원으로 상향하기로 합의, 즉시 시행에 나섰다. 인상폭이 놀랍다. 기존 첫째 80만원, 둘째 100만원, 셋째 이후 300만원이 각각 1000·1500·2000만원이 됐다. 둘째 아이만 보더라도 장려금이 하루 아침에 15배로 뛰었다. 아이 1명만 낳아도 1000만원대 지원금을 받는 것으로 은행권, 아니 금융권 최고 수준이다. 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다른 대형은행의 경우 셋째 아이를 출산해도 300만원이 넘지 않는다.
통상 노사 합의는 힘겹게 의견 조율이 이뤄졌다 해도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기 십상이다. 엄격히 보면 국민은행의 이번 출산장려금 확대도 그들만의 잔치다. 다만 '사회적으로 의미를 주는' 그들만의 잔치다. '리딩뱅크의 무게'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벼운 분석이다. '이자장사' 반대급부로 결정한 환원이라 보기에도 불충분하다.
은행판 부영. 2021년 이후 아이를 출산한 직원에게 자녀 1명 당 1억원씩 출산장려금을 지급한 부영그룹의 신입·경력사원 공개채용에 최근 예년보다 5배 이상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고 한다. 특히 40~50대 지원자가 주를 이루던 경력사원 모집에서도 2030세대 젊은 지원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분석이다. "출산장려금 지급이 경제적 이유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망설였던 젊은 세대 구직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진 것 같다"는 회사 관계자의 멘트에서 국민은행의 출산 장려금 확대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마중물. 시작은 이번 국민은행 노사 합의처럼 '내 일터 공동체' 일지라도, 과정과 끝이 '사회 공동체'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펌프질을 할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위에서 붓는 물을 마중물이라 한다. '새 물을 맞이하는 물'이 그간 삼성전자를, 부영을 부러워만 했던 은행권에도 드디어 생겼다. 국민은행이 상장사, 그것도 외국인 지분율 77%에 육박한 KB금융지주의 핵심 계열사임을 감안하면 은행의 2000만원은 부영의 1억원 가치 못지않다.
출산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다만 돈 때문에 임신·출산을 주저하고 있는 이들에게 넉넉한 출산장려금은 좋은 지원책이 될 수 있다. '넉넉한' 기준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을 터다. 일단 이전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금액을 늘리기라도 해야 젊은이들의 마음을 1이라도 더 얻을 수 있을 것 아닌가. 마침 은행연합회에는 23곳 정사원 은행이 있다. 두 번째 마중물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