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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정의 P+R


낯선 곳에서 현지인으로 살아보기

 

얼마 전 큰 결심을 하고 제주 한달살이를 시작했다. 오래 전부터 낯선 곳에서의 한달살이를 로망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는데 하는 업(業)이 노트북과 휴대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일이고, 이미 코로나 펜데믹 이후 재택, 반재택 형태로 근무를 해오던 터라 결국 결심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워케이션’(Workation)'이 정말 가능한지 테스트해보고 싶은 맘도 컸다. 

 

제주에서 한달 간 살 집을 구하면서 몇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제주 여행’이 아니라 ‘제주 한달살이’인 만큼 원주민들이 사는 동네에서 원주민처럼 그들과 어울려 살아보는 것이었다. 다행히 원주민들이 모여 사는 조용한 포구마을에 작고 소박한 시골집을 구해 한달살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제주살이 2주… 대문을 열어놓고 사는, 심지어 대문 없는 집들도 많은 동네, 할리데이비슨보다 더 자신만만하게 삼발이 오토바이를 모는 동네 할머니들의 힙한 광경, 상쾌한 아침 해변의 달리기와 아름다운 포구의 일몰… 단순히 공간만 바뀌었을 뿐인데 서울에서의 각박하고 타이트한 삶은 어느새 몸도 마음도 여유롭고 느린 삶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는 이렇다할 현지인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는 것. 옆집에 사는 집 주인과는 오가며 전하는 인사 외에는 서로의 사정을 묻고 나눌 일이 그다지 없고 참여하고 싶은 지역 커뮤니티도 아직 찾지 못했다. 우연히 흑돼지구이 식당에서 만난 강화도 출신 매니저는 제주 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원주민들의 커뮤니티에 끼기 어렵다고 한다. 오름 푸드트럭에서 만난 노부부는 제주에 온 지 40년이 되었지만 결국 대전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 한다. 

 

제주가 섬이라 텃세가 심한가 ? 그럴 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곳에서든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고 그곳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는 일은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낯선 곳에 적응하고 뿌리를 내리며 사는 사람들과 의미있는 관계를 맺고 그곳의 일원으로 동화되어 살아가는 일은 어렵고 불편한 일이다.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궁금한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제는 구태여 새로운 만남과 관계를 만드는 것이 귀찮고 의미없다고 느껴지는 중년의 나이라 그런 지도 모르겠다. 비대면으로 많은 것들이 이루어지는 세상에 익숙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2주 동안 내가 원주민들의 세상에 일원이 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현지인 친구를 사귈 가능성도 높지 않다. 그리고 익숙치 않은 장소와 사람에 대한 어색함과 불편함도 여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오늘 아침도 여전히 설레일 것이다. 다가올 새로운 만남과 인연을 기대하며… 

 

 

임현정 무버먼한국 & 꺼리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