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TV=김진태 기자] 현대차 러시아법인이 1년만에 '고매출 효자'에서 '천덕꾸러기'로 급변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전쟁이 터지면서 매출은 급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건비 등 투입되는 고정비용이 수천억대에 달하는 등 '밑바진 독에 물붙기' 상황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현대차 입장으로선 러시아법인을 정리하는 방법을 통해 자금 '누수현상'을 차단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이후 자동차 사업 재개를 염두에 둬야하기 때문이다.
당장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러시아법인을 정리하면 향후 다시 러시아법인을 세울 때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 러시아가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해 매각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으로 꼽히는 대목중 하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벌써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이 기간 국내 완성차 5개사중 맏형격인 현대차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연간 20만대의 생산량을 자랑하며 동유럽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러시아법인소속 현지공장이 지난해 3월 1일 기준으로 가동을 멈춤 탓이다. 문제는 공장 가동을 중단했음에도 고정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천문학적인 인건비다. 현대차 러시아법인에 소속된 임직원은 모두 2500명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가 해당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연봉 수준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국내 현대차 임직원 평균 연봉이 7700만원인 것으로 가정하면 현대차 러시아법인 임직원에게 지급하는 연봉은 1925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현지 법인 소속 임직원들이 받는 연봉이 국내 직원들의 절반이라고 가정해도 매년 나가는 인건비는 대략 1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러·우 전쟁으로 공장 가동이 멈췄는데도 1000억원에 이르거나 웃도는 인건비가 고정적으로 발생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러자 현대차도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러시아법인을 존속하돼 인력 줄이기에 나선 것이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17일까지 4주간 인력 구조조정을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노동법에 따라 공장 직원수를 최대 80%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러시아 지역에서 철수를 선택한 기아나 르노 등 타 업체와 다른 선택을 한 것은 시장의 가능성과 그간 공을 잔뜩 들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전쟁이 발발하기 전 2021년에만 해도 러시아 지역에서만 23만3804대를 팔았다. 해당 기간 현대차가 해외에서 판매한 차량이 총 227만대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러시아 시장 비중은 10%를 웃도는 셈이다.
현대차가 당장 손해를 보는 러시아법인을 정리하지 않는 것도 러시아 시장 규모와 맞물린다. 러시아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현대차는 지금의 전쟁이 끝나면 다시 러시아법인을 세워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지출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특히 러시아가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면서 발생할 불이익들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지난해 3월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채무 변제와 거래대금 지급시 루블화를 사용하라고 통보한 바 있다.
이뿐 아니다. 최근 기업들이 잇달아 러시아를 떠나면서 러시아가 비우호국 기업에 추가 제재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내용에 따르면 러시아에 진출한 외국 기업은 자산을 매각할 경우 매각 대금의 10%를 세금 명목으로 러시아 정부에 내야 한다. 여기에 매각 대금을 자산 규모의 50% 수준에 팔아야 한다.
현대차 러시아법인의 총 자산이 지난해 3분기 기준 2조4984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현대차가 러시아법인을 정리할 때 1조원이 넘는 돈이 허공에 증발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입장에선 (러시아법인을)매각하는 것보다 기다리는 게 더 좋은 선택일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러·우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피해가 누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