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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영화 ‘빅쇼트’가 남긴 것, 평생 같이 가야 할 ‘금융학습’

[경제만사]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와 관련한 금융 당국의 배상안이 다음 주 발표될 예정이다. 투자 시점의 홍콩H지수가 만기시 30% 가량 떨어져도 원금이 보장되는 ELS 상품을 증권사가 운용하고 은행이 판매했다. 국내 금융회사의 홍콩 ELS 총 판매규모는 19조3000억원으로 올해 약 80%에 달하는 15조4000억원의 만기가 도래한다. 

 

가장 큰 관심인 ‘배상’ 비율은 0%부터 100%까지 차등화될 것으로 보인다. 원금 100%를 배상받거나, 아예 못 받는 투자자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ELS는 한때 ‘중위험, 중수익’ 투자처로 각광받던 국민 재테크 투자상품이었다. 하지만 홍콩H지수 대규모 손실 발생으로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여기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다. 위험을 동반하는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 손실을 금융회사나 정부가 배상해주는 것이 자본주의 원칙과 시장경제 체제에서 맞느냐는 것이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앞세워 금융사에 책임을 지우며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금융 당국의 태도가 옳은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되풀이되는 대규모 손실 사태 속에서 금융 당국이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하게 되면 국가 경제 시스템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또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과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영화 ‘빅쇼트’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주택담보대출상품)사태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때 발생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1929년의 경제 대공황에 버금가는 혼란을 초래했다. 영화에는 “금융 용어가 어려운 건 보통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월가가) 처음부터 고안해 낸 말”이라던 대형은행 트레이더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의 독백이 나온다.

 

금융위기 당시 주택 가격에 얼마나 거품이 끼었고, 대출 브로커들이 얼마나 부도덕했는지 등을 보여준다. 금융회사, 투자자, 금융소비자 등 금융 시스템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때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미국에서만 연기금, 퇴직금, 예금, 채권 등의 가치가 5조달러 이상 증발하고 600만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금융회사를 통한 보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고, 특정 금융상품의 판매를 금지하거나 규제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그 출발선에 ‘금융학습’이 있다. 당국의 배상안만큼이나 ‘투자자 자기 책임 원칙’이 훼손되지 않기 위해 금융교육 강화 방안 마련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국제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2018년 발표한 ‘세계 금융 이해력 조사’에서 한국은 142개국 중 77위를 기록했고, 금융 문맹률이 67%에 달했다. 금융에 대한 무지는 빚투·영끌족의 주식 ‘상투 매수’ 등 투자 실패로 이어졌다. 다만 최근 몇 년 새 우리나라 국민들의 금융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3 OECD/INFE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한국 성인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7점으로 조사 참여 39개국 평균(60점)보다 높았다.

 

소비자들은 금융상품은 위험을 수익으로 보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부동산, 미술, 음악 등 모든 것을 금융상품화 하는 시대를 사는 소비자들에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는 숙명과도 같다. 

 

2022년 국내에 출간된 ‘더 레슨(THE LESSON)’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투자자로 꼽히는 존 템플턴, 피터 린치, 워런 버핏의 투자 철학과 전략을 다루고 있다. 세 사람의 투자 철학은 다르지만 모두 ‘학습’에 열정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금융학습의 중요성을 확인 할 수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금융 조기 교육론을 펼쳤다. 일찌감치 금융교육을 잘 받아야 성인이 돼서 전략적인 저축 및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등학교 의무교과에서 경제 과목을 빼 버린 것은 시대 역행의 한 단면이다. 반면 미국 영국 등 대부분 선진국은 학교에서 금융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다시금 자레드 베넷의 독백이 떠오르는 요즘,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위해 배운다(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던 세네카의 말을 되새겨 본다. 키케로와 함께 로마 철학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세네카는 진학, 출세 등을 위한 지식 추구가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배움’을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를 원한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닐까. 경제적 자유가 ‘돈이 없음으로 생길 수 있는 괴로움’을 상당량 줄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금융의 변화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그럴수록 금융문맹이 불러올 위험은 커진다. 


정해균 경제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