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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한국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기업 밸류업 성공하려면

[경제만사]

 

정부는 지난달 말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일본을 벤치마킹해 도입한 '기업 밸류업(가치 상승)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후 자문단 구성과 7년 만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행동 지침) 개정 등 시장 참여자들의 '기업 밸류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밸류업 방안의 핵심은 상장회사의 ‘자본 효율성 제고’와 ‘주주환원 확대’를 통한 주가 부양이다. 미국 증시를 견인하는 7대 주요 기술기업 중심의 ‘매그니피센트7(M7)’이 있다면 일본에는 ‘7인의 사무라이’가 있다. 한국에도 M7, 7인의 사무라이가 나올 만한 기업 친화적 증시 환경을 만들 자는 것이다.

 

일본 증시는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4만선을 돌파하며 ‘황소 장세(Bull Market)’를 이어가고 있다. 저금리와 엔저(엔화 가치 하락),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과 함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4월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배 미만인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그 결과 2022년 4분기 50.6%이던 일본의 저PBR 기업 비율은 지난해 3분기 45.8%로 4.8%p(180개) 감소했고, 투자자의 증시 참여가 늘었다. PBR이 1배보다 낮은 건 주가가 장부 가치보다 낮아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반면 한국 증시를 싸구려 취급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심각하다. 한국 증시의 지난해 말 기준 PBR은 1.05배로 10년 평균치(1.04배)와 비슷했다. 지난 10년간 선진국 평균 PBR인 2.5배와 비교하면 매우 뒤처진다. 신흥국 평균 PBR인 1.58배와 비교해도 낮은 수치다.

 

상장사 배당성향도 마찬가지다. 10년 평균 기준 한국은 26%, 신흥국은 39.6%, 선진국은 49.5%로 격차가 크다. 한국 상장사는 ROE(자기자본이익률)도 낮다. 작년 말 기준 5.2%로 같은 기간 신흥국(평균 10.8%), 선진국(평균 14.3%)의 절반을 밑돈다. 기업 지배구조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경젱력지수(GCI)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는 2017년 기준 140개국 가운데 100위에 머무른다. 

 

지난달 15일엔 일본 도요타가 7년여 만에 한국 대표주인 삼성전자를 제치고 아시아 시가총액 2위에 올랐다. 아시아 시총 1위 기업은 세계 최대 파운듸(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대만의 TSMC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지난 14일 코스피는 2718.76에 마감했다. 이는 2022년 4월 22일의 2704.71 이후 최고치다. 또 2월 한 달간 외국인은 코스피(유가증권시장), 코스닥을 합친 국내 증시에서 7조4000억원어치를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했다. 외국인 한 달 간 사들인 규모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종전 최대는 2013년 9월의 8조3000억원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이 외국인들의 '바이 코리아(but korea)'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외국인 순매수의 색깔 변화’ 보고서에서 최근 영국 등 유럽계 투자자의 순매수가 많이 늘어난 것은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많은 외국인 투자자는 '이번이야 말로 한국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입을 모은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두드려라. 그러면 문이 열릴 것이다.’ 성경 마태복음 7장 7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지금은 기업, 투자자 등 시장 참여자들의 강한 두드림이 필요하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등 밸류업 프로그램 성공을 위한 전문가들의 제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제도 성공을 위해서는 기업들의 중장기적인 기업 제고 노력에 나서야 한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일본에서처럼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의 정교한 정책 수단 마련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로버트 그린과 레퍼이자 비즈니스 거물 피프터 센터가 쓴 ‘50번째 법칙(The 50th Law)’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인간의 본성상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두고 만다. (중략) 하지만 더 먼 미래를 깊이 생각할수록 미래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 능력은 더욱 향상된다. 이것이 '힘의 법칙'이다. 힘은 모을 때 세진다.

 

힘을 모으는 것 만큼 세밀함도 필요하다. 일본은 증시 부양을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여러 차례 개정하며 기업가치 제고를 유도했고 성공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다듬고 고쳐나가는 디테일이 없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한국 증시의 발전과 경제성장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지 않는가.

 

외국인 투자자자들은 양호한 국가 재정과 지속적인 무역 흑자, 4000억달러 이상의 외환 보유고 등 한국 경제의 장점이 사라졌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한국 주식과 채권을 팔고 떠날 수 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시간(때)과 기회의 신 ‘카이로스’의 머리 옆모습은 숱이 무성하지만 뒷부분은 대머리다. 기회는 바람같이 사라지기 때문에 한 번 놓치면 붙잡을 수 없다는 의미다. 한국 증시를 한 단계 끌어올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시계는 지금 돌아가고 있다.

 

 

정해균 경제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