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김윤섭 기자] 국내 소비침체와 규제 등으로 국내 시장에서의 성장이 더뎌지는 유통업체들의 시선이 해외로 향하고 있다. 아모레·LG생건을 필두로한 K뷰티부터 출점 제한에 막혀있는 대형마트와 최근 지분매각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K배달까지 글로별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모레·LG생건 등 중국 넘어 미국 시장 안착에 역량 집중
지난해 3분기 오랜만에 실적 반등에 성공한 아모레퍼시픽과 3분기 분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도 영업이익 1조원을 향해 순항중인 LG생활건강은 포화상태인 국내 시장과 중국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 안착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중국 시장 성장률이 정체되고 있고 최근 중국 수입화장품 1위 자리를 일본에 내주는 등 중국 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해 1·4분기에 중국 수입화장품 1위 자리를 일본에 내줬다. 국제무역센터(ITC) 조사결과 1·4분기 중국 화장품 시장의 국가별 수입액은 일본이 7억7000만달러(약 9200억원)로 가장 많았다. 이어 프랑스가 7억3000만달러(약 8800억원)로 2위, 한국이 7억2000만달러(8600억원)로 3위였다. 한국은 지난해 프랑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으나 이번에 3위로 밀렸다.
K뷰티의 성장을 이끌어 온 중화권을 벗어나 좀더 다양한 지역으로 영역을 확장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후와 숨으로 중화권 지역을 장악한 LG생활건강은 지난해 4월 북미사업 진출을 위해 에이본을 1억2500만달러에 인수했다.
뉴에이본은 한 때 매출이 13조 원에 이르던 에이본의 해외사업 본사 역할을 했던 회사로 IT, 구매, 물류, 영업 등에서 탄탄한 인프라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LG생활건강은 이번 인수를 바탕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캐나다와 남미까지도 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시장은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의 글로벌 최대 시장으로 규모가 각각 50조원에 달한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우수한 R&D 기술력과 제품 기획력으로 Avon 브랜드들의 제품 라인을 업그레이드해 사업을 발전시킬 것"이라며 "확보되는 북미 인프라를 활용해 LG생활건강 브랜드를 미국시장에 진출시키는 교두보로 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해외 시장에서 1조9704억원의 매출을 올린 아모레퍼시픽도 중국이 아닌 다른 시장으로의 진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 시장 성장률이 정체기에 접어들었고 중화권 매출 비중이 90%달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호주, 필리핀, 중동시장에 진출한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성장세가 두드러진 미국시장에서 대표 브랜드인 설화수, 라네즈, 마몽드, 이니스프리를 앞세워 미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다는 전략이다. 218년 호주에 진출했던 이니스프리는 캐나다 1호점을 준비 중이다. 또 에뛰드는 베트남, 인도 시장에 새롭게 선보이며 러시아 시장 신규 진출도 계획 중이다. 유럽, 중동, 호주 시장에서도 매장을 꾸준히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 배달의 민족 DH에 인수되며 글로벌 시장 진출…350조 시장 잡는다
K뷰티뿐 아니라 K배달도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5조원에 가까운 몸값을 인정받으며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되면서 350조원 규모 글로벌 배달앱 시장에 뛰어들었다.
우아한형제들은 구랍 12월 13일 배달 앱 ‘요기요’를 운영하는 DH에 지분을 전량 매각한다고 밝혔다. DH는 우아한형제들의 전체 기업가치를 40억달러 ( 4조7500억원)으로 평가했다. 김봉진 대표는 DH 경영진 가운데 개인 최대 주주가 되며, DH 본사에 구성된 3인 글로벌 자문위원회의 멤버가 된다.
양측은 또 50대50 지분으로 싱가포르에 합작회사(JV)인 ‘우아DH아시아’를 설립하기로 했다. 김봉진 대표는 신설 법인 우아DH아시아의 회장을 맡아 배달의민족이 진출한 베트남 사업은 물론 DH가 진출한 아시아 11개국의 사업 전반을 경영한다. DH는 현재 대만, 라오스,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싱가포르, 태국, 파키스탄, 필리핀, 홍콩 등에서 배달 사업을 실시 중이다.
이번 합작회사 설립으로 우아한형제들은 향후 아시아 시장에서 신규로 진출하는 배달앱 서비스에서 ‘배달의민족’ 또는 ‘배민’ 명칭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김봉진 대표가 아시아 사업에 나서면서 국내 우아한형제들 경영은 최고기술책임자(CTO)인 김범준 부사장이 맡게됐다.
현재 350조 규모로 평가되는 글로벌 배달앱 시장은 크게 내스퍼스 계열과 손 회장의 비전펀드 계열, 저스트잇 계열 등 3강 구도로 이루어진 상태다. 내스퍼스는 아프리카의 소프트뱅크로 불리는 투자사로 중국 텐센트의 최대 주주로 유명하다. 이번 인수를 통해 이번 인수로 글로벌 1위인 딜리버리히어로와 중국 1위인 메이퇀뎬핑(美團點評)과 동남아 1위 푸드판다, 한국 1위인 배달의민족을 포트폴리오에 담게 됐다.
손정의 회장의 비전펀드는 쿠팡이츠와 우버이츠에 투자한 상태다. 북미지역과 아시아 지역에서 내스퍼스의 업체들과 경쟁중이다. 유럽 1위 기업인 저스트잇과 2위 테이크어웨이는 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딜리버리히어로와 우아한형제들의 M&A(인수합병)가 배달앱 시장의 ‘공룡’이 되기 위해서 넘어야할 과제들이 남아있는 상태다.
우선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핵심은 공정위가 시장의 범위를 배달앱, 배달, 이커머스(전자상거래) 등 어디까지로 볼 지다. 공정위가 두 회사의 합병을 배달앱 시장으로만 놓고 보면 합병에 따른 독점 논란을 피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국내 배달앱 시장의 점유율은 배달의민족(55.7%), 요기요(33.5%), 배달통(10.8%) 순이다. 배달통 역시 DH가 운영하고 있어 사실상 배달앱 시장은 DH가 99%가량 차지한다. 국내 시장에서 개별적으로 운영한다고 해도 점유율 1,2,3위가 한 회사에 속해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공정위의 심사뿐 아니라 자영업자들과 소비자들 배달 기사 등의 부정적인 여론도 해결해야할 과제로 꼽힌다. 5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한 배달앱 시장에서 시장내 각 1,2,3위가 한 몸이 되면 더 이상 다른 사업체들을 의식하지 않고도 수수료 인상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수 발표 이후 전국가맹점주협의회는 최근 논평을 통해 "1개 기업으로 배달앱 시장이 통일되는 것은 자영업 시장에 고통을 더하게 될 것"이라며 "배달앱으로 사실상 유통과정이 한단계 추가되면서 많은 자영업자가 수수료와 광고료 부담에 고통받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독일자본의 배달앱시장 독점 피해는 고스란히 자영업자·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 기업의 결합은 소상공인들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고 소비자 선택을 저해할 것인 만큼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힌다”고 말했다. 연합회는 지난 18일에도 “공정거래위원회는 DH와 우아한형제들의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엄정한 심사에 나서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매각대상 기업인 DH가 독일기업이라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배달의 민족이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문구를 통해 국내 기업임을 강조하는 애국마케팅 전략을 사용해 1위에 올랐는데 너무 쉽게 해외 자본에 매각했다는 것이다.
이에 온라인에서는 배달의 민족 대신 유선전화로 배달 주문을 하겠다는 등의 불매운동 움직임까지 등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배민에서 메뉴만 검색한 뒤 주문은 직접 전화로 하자는 구체적인 행동요령까지 공유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의 김범준 부사장과 김봉진 대표는 최근 직원들과의 대담에서 “딜리버리히어로와의 M&A로 인한 중개 수수료 인상은 있을 수 없고 실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딜리버리히어로와의 M&A는 한국서 출발한 스타트업을 국내 1위로 키운 뒤,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킬수 있느냐의 갈림길에서 일어난 딜”이라며 “국내 수수료를 조금 올려 보자는 차원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 달라”고 말했다.
◆롯데마트·이마트 동남아 출점 속도↑…국내규제에 해외로 눈 돌린다
국내 규제에 막혀 성장동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대형마트들도 해외에 마트를 출점시키면서 본격적인 해외 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특히 국내 대형마트 1,2위인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최근 높은 성장성을 보여주고 있는 동남아를 중심으로 시장 확대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대형마트들이 줄줄이 동남아 유통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커머스의 강세로 인한 국내 유통시장이 장기 불황 현상을 보이는데다 대형마트를 타킷으로 한 정부의 유통규제가 개선될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롯데마트는 ‘동남아 통’으로 알려진 문영표 대표를 중심으로 다른 업체들보다 특히 해외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올해 롯데마트의 수장으로 배치된 문대표는 롯데마트에서 인도네시아법인장과 동남아사업본부장을 거친 ‘동남아시아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롯데마트가 해외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이유는 국내 롯데마트가 좀처럼 실적 반등 요인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 사태 이후 그나마 중국 시장을 정리하면서 효율화에 성공했지만 흑자 전환으로 가기까지는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해 3분기 롯데마트는 매출 1조6640억 원, 영업이익 120억원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3분기보다 매출은 2.6%, 영업이익은 61.5% 줄었다.
그러나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시장에 집중했던 효과가 나타나면서 영업이익이 증가세로 돌아섰다. 롯데마트는 지난 2008년 인도네시아 마크로 19개점을 인수하며 시장에 처음 진출했다. 구랍 12월 27일 인도네이사 48호점인 찌마히 점을 오픈한 롯데마트는 연내 인도네시아 빠칸사리점과 뜨갈점을 추가 오픈해 총 50개 점포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같은 해에 진출한 베트남도 지난달 기준으로 14개의 점포를 운영중이다.
롯데마트의 동남아 점포 수는 국내의 절반수준이지만 수익성은 국내 점포를 이미 상회하고 있다. 지난해 1분기에 해외 영업이익 100억원을 기록한 롯데마트는 3분기에도 1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국내 영업이익 20억원을 크게 상회했다.
베트남 고밥점 1곳은 운영하고 있는 이마트도 동남아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마트는 구랍 12월 22일 필리핀 마닐라에 현지 2위 유통기업인 '로빈슨스 리테일'을 통해 프랜차이즈 형태의 '노브랜드 전문점' 필리핀 1호점을 출점했다. 노브랜드 전문점 필리핀 1호점은 한국 노브랜드의 절반 수준인 총 630여종의 상품을 판매하며, 지난해 연말까지 670여종까지 늘릴 예정이다. 70% 가량은 노브랜드 PL상품(신선·가전 제외)이며, 나머지는 현지 인기 상품을 판매한다.
프랜차이즈로 진출하는 만큼 파트너사인 로빈슨스 리테일 측이 매장을 개발·운영한다.
또 지난해 10월 22일에는 마닐라의 복합쇼핑몰 '로빈슨 플레이스몰'에 기초화장품 브랜드 '센텐스'를 입점시켰다. 센텐스 필리핀 1호점은 개점 후 한달여 만에 현재 쇼핑몰내 다른 화장품 브랜드보다 2~3배 높은 일 매출액을 거두며 시장에 안착한 상태다.
지난 2015년 오픈한 베트남 1호점 고밥점도 20년 첫 흑자 전환에 이어 올 상반기에만 36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상승세에 돌입했다. 지난해 9월 이마트는 본격적으로 베트남에서의 대형마트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46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히면서 2020년 호찌민 시에 2호점을 내고 중장기적으로 5~6호점까지 점포를 확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연내 출점하기로 한 호찌민 2호점 계획이 현지 사정으로 미뤄지고 있어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형마트들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는 차원도 있지만 국내의 각종 규제들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전통시장에서 반경 1㎞내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지정하고 대형마트 입점을 금지한다. 영업 중인 대형마트도 매달 2번은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하고 영업시간(0시~10시)도 제한받는다. 이는 결국 대형마트들이 국내 출점을 하는데 있어 부담으로 작용됐다.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3개 대형마트 국내 점포수는 2016년(408개)대비 오히려 감소했다(405개·2019년). 올해만 3개 점포를 폐쇄했다
이런 상황에 산업통상자원부는 대규모 점포 출점시 상권영향평가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오는 12월 29일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이 적용되면 음·식료품 등 종합소매업, 즉 슈퍼마켓이나 전통시장에 대한 영향만 평가해서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했던 것을 의류나 가구, 완구 소매업에 대한 영향도 평가해 보고해야 한다.
지난해 이마트와 롯데쇼핑이 각각 2분기와 3분기에 적자를 기록하는 등 벼랑 끝 위기에 몰린 상황에 규제 강화까지 겹치게 된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미 국내 온라인 시장 규모가 오프라인 유통 시장을 뛰어넘은 상황에서 상공인과 전통시장 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워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온라인 시장을 더욱 키워주게 되는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19년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는 오프라인 업체들이 2020년 해외 시장 진출을 통해 위기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