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의 어려운 과제 중 하나가 '치매(痴呆)'이다. 치매는 고령자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돌보는 가족에게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안기게 된다. 치매 고령자가 늘면서 각종 사고를 유발하거나 길을 잃고 행방불명이 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추정 치매 환자 수는 105만 명에 이르고 있다. 치매 환자의 돌봄 가족이 없는 경우에는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하므로 치매 고령자 수의 증가는 개인과 가족을 넘어 '초고령사회'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는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2006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고령자의 치매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1990년대부터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했었다. 특히 치매라는 용어에는 어리석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사회적 공감 아래 일반인의 편견을 줄이고자 2004년부터 공식 명칭을 '인지증(認知症)'으로 변경해 사용하고 있다. 이후 2012년에는 ʻ인지증 대책 5개년 계획ʼ을 수립했으며, 2015년에는 기존 대책을 수정·보완한 ʻ인지증 종합전략ʼ을 발표했다. 나아가 2019년에는 여당이 인지증기본법안을 제출했지만 다시 수정을 가해 우여곡절 끝에 2023년 국회를 통과, 2024년 1월부터 법이 시행되고 있다.
2019년 여당에 의해 작성된 법안과 2023년 국회를 통과한 법안을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법의 목적과 기본 이념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이다. 2019년 법안에서는 치매 예방과 정책 추진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2023년 법안에서는 치매 고령자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핵심 가치로 삼았다. 즉 치매 고령자를 단순히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 '공생사회'를 실현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이에 따라 법률 명칭도 ʻ공생사회 실현을 추진하기 위한 인지증기본법ʼ으로 변경했다.
이상에서 살펴 본 일본 인지증기본법의 주요 내용을 핵심만 간단히 보면 다음과 같다. 법의 목적은 치매 고령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개성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며, 서로 인격과 개성을 존중하고 공생하는 활기찬 사회 실현을 추진하는 것으로 삼았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기본이념으로 7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모든 치매 고령자는 기본적인 인권을 향유하며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국민에게 치매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치매 고령자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야 한다. 셋째, 치매 고령자가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안전하고 자립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장애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넷째, 치매 고령자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양질의 보건의료 서비스와 복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다섯째, 치매 고령자와 그 가족에 대한 지원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공생사회 실현을 위한 연구를 추진하며 예방, 진단, 치료, 재활 및 간병 방법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를 병행해야 한다. 일곱째, 교육, 고용, 보건, 의료, 복지, 지역사회 만들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합적인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일본의 인지증기본법은 치매 고령자를 단순히 돌봄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을 향유하며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체계라고 할 수 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일본의 치매 고령자 관련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점을 두 가지만 정리해 본다.
첫째, 치매와 치매 고령자에 대한 접근에서의 관점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치매 고령자를 관리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공생사회의 한 주체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에 치매관리법을 제정하고 2021년 12월 치매 국가책임제를 도입하는 등 적극적인 치매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치매관리법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법은 치매 고령자를 관리한다는 철학이 내포되어 있다. 즉 현재의 정책은 치매로 인한 개인적 고통과 피해 및 사회적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치매 고령자가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자립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철학은 부족하다.
둘째, 치매 관련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치매 환자 본인의 의견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겠다. 현재 치매관리법에 따라 국가치매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있으며 정부위원 4명과 각 계의 추천을 받아 위촉된 민간위원 12명이 있지만, 위원 중 한국치매가족협회장이 가족 대표로 참여할 뿐 정작 치매 환자 본인은 포함되지 않고 있다. 반면 일본의 인지증대책추진관계자회의는 정부, 관계 기관, 전문가뿐 아니라 치매 환자 당사자 3명과 가족단체 대표도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치매 환자 본인이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한편 치매 고령자 입주시설인 그룹 홈에서도 운영 방식은 치매 관리자가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으면서,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김형기 연세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