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심준보 기자] 2024년 국내 증시는 연초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미국 대선,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내외 악재가 겹치며 부진의 늪에 빠졌다. 특히 12월에는 비상계엄 선포, 대통령 탄핵 등 초유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해지며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다.
올해 1월 2일, 정부는 증시 개장식에서 "자본시장 규제 혁파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공식화했다. 2월 정부는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발표(유관기관 합동)하며, 밸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시장은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으로 코스닥이 지난 3월 26일 916.09p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이후 구체성과 강제성이 부족하다는 비판과 특정 금융주와 지주회사가 제외됐다는 이유로 시장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한국거래소는 뒤늦게 지난 20일 특별 편입을 통해 금융주와 통신주를 밸류업 지수에 포함시켰지만, 밸류업 지수는 지난 30일 기준 948.90p로 기준치(1000p)를 하회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7월 11일 코스피가 연중 최고점인 2891.35p를 기록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8월 5일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강달러 현상 등 대외 악재가 드러나며 1단계 서킷브레이커(CB) 및 매도 사이드카(SC)가 발동됐고, 코스피와 코스닥은 동반 급락했다. 다음 날인 8월 6일에는 매수 사이드카(SC)가 발동하는 등 회복했지만, 일시적 상승이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8월을 기점으로 순매도로 전환하며 12월까지 5개월 연속 순매도 행진을 이어갔다. 9월 19일 미국이 기준금리를 0.5%p 인하하고, 9월 24일 한국거래소가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10월 11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25%p 인하했지만, 증시 부양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11월 6일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트럼프 리스크'가 부상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을 예고하며 국내 증시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 11월 28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25%p 추가 인하했지만, 증시 반등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12월, 국내 증시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이라는 초대형 악재를 만났다.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으며 코스피는 9일 2360.58p, 코스닥은 627.01p로 연중 최저점을 기록했다. 이후 국내 증시 마지막 날인 30일, 코스피는 2399.49p, 코스닥은 678.19p로 거래를 마감했다. 코스피는 2023년 말 대비 9.6%, 코스닥은 21.7% 급락했다.
업종별 수익률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운송장비·부품(+20.2%), 금융(+18.4%), 통신(+14.9%) 등 이른바 저PBR(주가순자산비율) 관련주는 밸류업 프로그램 기대감에 힘입어 강세였다. 반면, 화학(-34.7%), 섬유·의류(-27.3%), 전기·전자(-22.8%) 업종은 중국 경기 부진, 반도체 업황 우려 등으로 약세를 면치 못했다.
코스피 대장주 삼성전자의 부진은 시장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연초 8만7800원까지 올랐던 삼성전자 주가는 5만3200원으로 거래를 마쳐, 연초 대비 32% 넘게 하락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4분기 실적 역시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하락을 부추겼다. 지난해 국내 주식시장 상승을 이끌었던 2차전지 관련주 역시 부진을 면치 못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연초 대비 18.6% 하락했고, 코스닥 2차전지 대장주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 역시 각각 61.84%, 56.56% 하락했다.
2025년 국내 증시 역시 불확실성이 높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준서 한국증권학회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우려가 커지고 기업 이익 전망과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 불확실성이 투심 악화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면서 “올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큰 축인 주주환원 관련 인식은 개선됐으나 진정한 밸류업 효과가 나타나려면 기업지배구조 개선, 기관투자자의 책임있는 역할, 본질적인 수익성 향상 등 측면이 정상화 돼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투자심리가 극단적으로 위축된 가운데 현 상황에서 시장을 견인할 긍정적인 이벤트가 나타나길 기대하긴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다만 대신증권 이경민 연구원은 "올해 미국 주식 쏠림현상은 심한 수준이었다"면서 "한국, 중국 등 달러 강세에 눌렸던 증시가 내년에는 반등을 시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연구원은 "내년에 주목해야 할 업종은 이차전지, 바이오, 인터넷 등 성장주"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