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정상혁 신한은행장이 2년 더 신한은행을 이끈다. 지난해 3월 신한금융그룹 수장에 오른 진옥동 회장과 같은 경로를 거치면서 조직 내 입지가 한 차원 더 공고해졌다.
신한금융은 5일 자회사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자경위)를 열고 정상혁 현 은행장을 차기 신한은행장 후보로 추천했다. 은행 이사회 및 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선임될 예정이다. 자경위는 이날 자회사 최고경영자(CEO) 13명 중 4명의 연임을 결정했는데, 임기 1년을 부여받은 다른 후보들과 달리 정 행장은 유일하게 임기 2년으로 재선임 추천됐다.
자경위에서 진옥동 회장은 '바람이 바뀌면 돛을 조정해야 한다'라는 격언을 인용, 근원적인 혁신과 강력한 인적쇄신 및 세대교체를 통한 체질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9명의 CEO를 모두 교체한 배경으로 풀이된다. 다만 '혁신' '쇄신' 등 강한 어휘 속에서도 그룹 총자산의 약 62%를 차지하는 최대 자회사 은행 수장에게만큼은 대조적으로 '재신임'을 선택했다. 이번 자경위는 진 회장의 의중이 온전히 반영되는 첫 자경위였다. 정 행장에게 이목이 모이는 이유다.
특히 정 행장이 추가 임기 2년을 부여받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임 시 1년씩 임기를 부과하는 그룹의 관례를 깼다. 앞서 진 회장도 행장 시절 첫 임기 2년을 소화한 뒤 2021년 연임에 성공하면서 2년 추가 임기를 받았다. 정 행장으로선 앞으로 2년간의 시간을 통해 중기적 시각에서 은행 성장을 도모하면서도 그룹 전체적 관점에서 리더십을 갖출 시간을 얻게 된 셈이다.
이는 정 행장이 기존 '진옥동 믿을맨'에서 '포스트 진옥동'으로 그룹 내 입지가 더욱 확고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 회장이 2019년 신한은행장에 취임한 직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을 맞추는 비서실장에 낙점된 인물이 정 행장이다. 정 행장은 비서실장으로 1년을 보낸 뒤 경영기획그룹장이 됐고, 이 시기 상무에서 부행장으로 승진하며 3년간 진 회장을 보좌했다. 진 회장이 그룹 CEO가 된 후로는 회장-행장으로 관계가 확장, 2년 동안 진 회장의 리더십을 뒷받침했다. 이번에 2년 임기를 추가로 부여받은 정 행장은 진 회장과 향후 1년, 진 회장이 내후년 연임에 성공해 3년 임기가 연장되면 최대 4년 동안 손발을 맞추게 된다.
정 행장이 회장의 전철을 따라 이례적으로 2년 임기를 받은 데는 '실적'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자경위가 정 행장의 연임을 추천하며 가장 먼저 언급한 배경 역시 "우수한 경영성과"였다. 신한은행의 올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3조102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9.4% 성장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중 유일한 3조원대 기록이자 가장 큰 성장폭이다. 이번 실적으로 정 행장은 진 회장의 '자존심'을 지켜줬다. 지난해 말 신한은행은 연 순익 성장률이 0%대에 머문 탓에 국민은행에 이어 하나은행에도 뒤처졌으나, 올해는 특히 비이자이익 부문에서 드라이브를 걸어 3개 분기 만에 작년 전체 순익을 뛰어넘었다.
정 행장이 그간 재임하며 그려온 은행 청사진을 구체화할 수 있는 2년간의 시간을 보장받은 만큼, 그가 수익과 건전성 두 축 사이에서 어떤 경영전략을 펼칠지 주목된다. 올해 영업 조직이 탄력을 받은 만큼 회복 시그널을 이어가야 하지만, 금리 인하와 초저성장 국면이 맞물리면서 내년에는 은행 간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이익 사수' 경쟁이 예고돼 있다. 올해 3분기(7~9월) 신한은행의 총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4.8% 성장해 2분기 역성장(-1%) 고리를 끊어냈으나, 국민은행(9.2%), 하나은행(5.1%)을 아직 밑돌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25년 1월부터는 책무구조도가 본격 도입, 정 행장은 한 단계 더 까다로워진 '내부통제' 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신한은행은 2023년 초 책무구조도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축, 부서장에서 은행장까지 이어지는 '책무구조도 점검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은행권에서 가장 오래 그리고 강도 높게 내부통제 강화를 준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