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불편이 가중되자 편의점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 문제가 재 점화되고 있다.
최근 끝난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김예지 의원(국민의힘)이 편의점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 필요성을 지적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서울시보건협회·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 9개 단체가 모여 결성한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는 지난 28일 성명서를 내고 국민 건강을 위한 편의점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 논의를 위해 정부가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관련 절차를 진행할 것을 촉구하면서 김 의원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시민네트워크는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안전상비약 품목을 확대하면 현재 의정사태로 인한 의료공백을 어느 정도 메꿀수 있다고 주장한다.
‘안전상비의약품 약국 외 판매 제도(안전상비약 제도)’는 약국 영업 외 시간에 국민들의 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2012년 도입된 제도로, 병원과 약국이 영업하지 않는 공휴일과 심야 시간대에 안전상비약 구입에 따른 국민의 불편을 해소해 주기 위해 마련됐다. 안전상비약은 주로 경미한 증상에 대한 자가 치료를 위한 약품으로, 사용이 간편하고 안전성이 높다. 그러나 사용자가 스스로 판단하여 약을 선택해야 하므로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약의 성분과 용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사용해야 한다.
당시 해열 진통제 5종, 소화제 4종, 감기약 2종, 파스 2종 등 13개의 안전상비약을 24시간 편의점에서 판매하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지정된 품목 중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80㎎과 타이레놀정 160㎎은 현재 국내 생산이 중단돼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안전상비약은 11개로 줄었다.
담당부처인 복지부는 품목 확대 필요성에 대해 동감하고는 있지만 약사 단체의 거센 반발로 부딪쳐 12년째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약사 단체가 품목 확대에 반대하는 이유는 의약품 오남용 등 안전성 문제가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편의점 안전상비약 복용 후 혹시라도 발생할지도 모를 부작용에 대한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즉 구입의 편리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의약 안전을 도외시한 채 오로지 약을 소비재로만 접근하는 자본의 논리가 개입돼 있다고 비판한다.
이들 약사 단체는 심야, 휴일 시간대 의료공백은 편의점 안전상비약이 아니라 약사가 약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심야약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국에 운영 중인 공공심야약국은 200곳이 채 되지 않는데다 운영시간도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로 3시간에 불과해 약사 단체의 주장은 안전상비약 도입 취지와 맞지 않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안전상비약 매출은 2018년 504억원에서 지난해 832억원으로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약국이 운영되지 않는 시간대인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안전상비약 매출이 전체의 74.3%로 나타났다.
최근 복지부에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품목 확대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이 제도를 도입할 때는 시행 6개월 후 중간 점검을 거치고 시행 1년 후에 품목을 재조정하기로 했지만, 그 어떤 변화없이 지금에 이르렀다. 안전상비약과 유사한 제도는 선진국에서도 운영되고 있지만 허용 의약품 수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시민네트워크가 발표한 한국행정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약국 외 판매허용 의약품 수는 미국이 30만개 이상, 영국은 약 1500개, 이웃나라 일본은 1000여개에 이른다.
시민단체는 당장 품목 확대가 어렵다면 약사법에서 규정한 품목 수만이라도 채워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약사법에서는 안전상비약을 20개 이내 품목으로 규정하고 매 3년마다 타당성을 검토해 개선토록 하고 있다.
편의점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와 이를 반대하는 약사단체가 강하게 충돌하고 있어 솔로몬의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