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양대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자동차 전자장비(전장)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전자 DS,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하만 등 4개 주요 계열사에서 구광모 회장은 LG전자,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 등 3개 주요 계열사에서 전장사업의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두 회장은 주요 사업장을 방문해 전장사업의 현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임직원들에게 경쟁력을 갖출 것을 주문했다.
◇이재용, 현대차·BMW·테슬라 CEO(최고경영자)와 만나 전장 협력 논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차량용 전장 사업을 삼성의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고 초격차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재용 회장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올리버 집세 BMW 회장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글로벌 자동차업계 경영자들과 직접 만나 전장 사업의 경쟁력 강화에 앞장섰다. 이 회장은 지난해 일론 머스크 CEO를 만나 차량용 반도체 등 포괄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삼성은 전장 사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삼성전자 DS부문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하만 등 전자 부품 계열사의 역량을 집결해 전기차 부품 가치사슬을 구축하고 있다.
삼성은 2016년 '디지털콕핏'(디지털 계기판)과 카오디오 분야 세계 시장 1위 기업인 하만을 인수합병 했다. 하만은 인수 첫 해인 2017년 6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뒤 2023년 매출 14조3885억, 영업이익 1조1737억이라는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본격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최근에는 직접 삼성전기 필리핀 사업장을 방문해 전장용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사업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MLCC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한 만큼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반도체가 원활하게 동작하도록 하는 핵심 부품으로 스마트폰, 전기차 등에 사용되며 '전자산업의 쌀'로 불린다. 회로에 들어오는 전류가 일정하지 않으면 전자제품이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고장이 날 수 있으므로, MLCC가 반도체에 전기를 일정하게 공급하는 일종의 '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삼성전기는 1988년부터 MLCC를 개발·생산해 왔다. 전기차 및 자율주행 기술 발달로 인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전장용 MLCC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2018년 중국 텐진에도 MLCC 2공장을 건설했다.
이 회장은 2020년과 2022년 부산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전장용 MLCC 등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한 바 있다.
당시 이 회장은 부산 사업장을 방문해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선두에 서서 혁신을 이끌어가자. 현실에 안주하거나 변화를 두려워하면 안된다. 불확실성에 위축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자"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기는 국내 수원과 부산사업장은 연구개발 및 신기종, 원료 생산을, 중국 텐진과 필리핀 생산법인을 대량 양산기지로 운용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MLCC의 핵심 원자재를 자체 개발·제조해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전기차·ADAS 시장의 성장에 발맞춰 전장용 MLCC 매출 1조 달성 목표를 세운 바 있다.
MLCC는 쌀 한 톨보다 작은 크기에 수 백층의 유전체와 전극이 겹쳐있는 첨단 제품으로, 300mL 와인잔을 채운 양이 수 억원에 달한다.
스마트폰용 MLCC는 폰 1대에 1000여개 정도 들어가지만, 전기차에는 1만8000개~2만개 가량 탑재되어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의 시장 확대에 따라 전장용 MLCC는 업계의 '블루오션'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전장용 MLCC는 자동차에 사용되는 만큼 ▲고온(150도 이상) ▲저온 (영하 55도) ▲외부 충격 ▲높은 습도 등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최첨단 기술력을 기반의 높은 신뢰성과 내구성이 요구된다.
삼성전기는 ▲ADAS(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ABS(잠김방지 브레이크 시스템) ▲파워트레인(동력장치) 등에 사용하는 다양한 전장용 MLCC를 생산하고 있다.
◇ 구광모, '전장' 10년 후 LG를 책임 질 미래 먹거리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앞으로 10년 후 LG를 책임질 수 있는 미래 사업으로 ‘전장사업’을 택했다. 전장사업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기전자 부품 사업을 말한다.
업계에 따르면 구광모 회장은 지난달 체코 방문을 통해 전장사업의 협력 기회를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LG가 2018년에 인수한 자동차 헤드램프 기업 ZKW는 체코 현지에 생산법인과 연구개발(R&D) 법인을 운영 중이다. LG전자는 지난 2018년 1조4400억 원에 ZKW를 인수했다. 이는 LG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이다.
LG전자의 전장 부품 사업을 담당하는 VS사업본부는 올해 2분기 매출 2조6645억원, 영업이익 898억원으로 역대 2분기 중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글로벌 자동차 부품 업체인 마그나와 2021년 합작 설립한 LG마그나파워트레인도 연내 흑자 전환을 전망한다.
전신인 VC사업본부가 출범한 지 10년 만에 매출액 10조원을 넘겼다. 전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까지 증가했다.
LG전자는 10년 전 현재 VS사업본부의 전신인 VC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이에 앞서 몇년간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차량용 전장시장에 본격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또한 LG는 그룹 차원에서도 차량용 부품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 중 하나로 육성하기 위해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주요 계열사에서 시장 진출 준비를 이어왔다.
현재 LG이노텍과 LG디스플레이는 상반기 부진한 실적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전장 사업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를 기록했다
LG의 전장사업의 본격적인 성장에 구광모 회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먹혀들었다는 평가다. 구 회장 취임 후 스마트폰 사업과 태양광 사업을 접고 전장사업에 투자와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LG그룹은 지난 상반기 2조84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고, 자산매각 등으로 5조원가량을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하반기 부실 사업을 정리하고 배터리·소재·전장사업 투자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랜드는 지난 3월 ‘올해 자동차 업계 인물 50인’에 구광모 회장을 뽑았다. 순위는 10위 였다. 모터트렌드는 지난해 구 회장을 20위로 선정한 바 있다.
모터트렌드는 "(LG는) 자동차 산업에 배터리와 핵심 부품을 제공해 전기차와 AI, 로봇, 소프트웨어 및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채택을 가속화하고 있다"며 "구 회장은 회장에 오른 지 약 6년 만에 자동차 업계의 거물(major player)이 됐다"고 평가했다.
전장부품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은 별도의 수주 잔고를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업계 전문가들은 이들 회사의 수주잔고가 2025년 2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KB증권은 3분기 VS 부문 매출 성장률이 12%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 캐즘 현상으로 일시적으로 차량 수요가 줄었지만, 모든 차량에 장착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수요는 견조할 것이라는 이유다.
오강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VS(자동차 부품)의 2023년말 수주 잔고는 93조원(2022년 80조원) 추정"한다며 "안정적 매출 및 고부가 제품 믹스 효과 기대한다"고 전년보다 8% 성장한 3분기 실적을 전망했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LG전자는 최근 반도체·2차전지 업황부진에 따른 수급적인 매력과 금리 인하에 따른 주택 및 가전수요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며 "자동차 전장 사업도 100조원의 수주잔고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수익 확대가 예상된다"고 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LG전자 전장사업은 그룹 전자계열 3사간 시너지 효과에 따른 수주물량 확대로 마진 개선 추세에 진입해 큰 폭의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며 "또 전기차 시장 확대 수혜로 중장기 성장 가도를 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특히 올해 말 LG그룹 전자계열 3사의 전장 수주잔고는 132조원으로 사상 최대치 달성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