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창업주 일가가 벌이고 있는 진흙탕 싸움이 해를 넘길 전망이다. 이번 분쟁은 내부요인보다 외부 요인인 상속세가 직접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창업자인 고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회장 타계 후 창업주 일가의 지분 상속에 따라 부과된 상속세는 5,400억원이다. 이중 지난해까지 절반을 납부했으며, 나머지는 향후 3년간에 걸쳐 납부하면 된다.
한미그룹 모녀(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은 OCI그룹과 통합을 통해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한미사이언스를 이끌고 있는 형제(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 측이 반대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촉발됐다.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 지주사 이사회의 표 대결에서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종훈·종윤 형제 측을 지지하면서 갈등이 봉합됐다. 당시 형제 측은 4명의 이사를 새로 선임해 이사회 지형을 6대 4로 바꾸었다. 신 회장은 고 임성기 회장의 고향·고교 후배이자 한미사이언스 개인 최대 주주다.
하지만 신 회장이 변심을 하고 모녀와 3자 연합을 구성하면서 7대 3으로 이사회 지형이 모녀 측으로 기울면서 갈등이 재점화된 상태다. 이들 '3자 연합'은 지난 7월 전문경영인 체제를 내세워 이사회 정원 확대와 신규 이사 선임을 위한 임시 주총 소집을 청구했지만 한미사이언스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법원에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주총회 소집허가를 신청했다. 3자 연합이 법원에 낸 주총 소집 청구 심문기일이 다가오자, 결국 개최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달 27일 이사회를 열고 임시 주주총회를 오는 11월 28일 개최키로 의결했다.
다가오는 임시 주총에서는 지난 3월 정기 주총에 이어 또 한 번의 표대결이 펼쳐지게 된다. 임시 주총에서는 '3자 연합'이 제안한 이사회 정원 확대를 위한 정관 변경 안건과 임 부회장, 신 회장의 이사 선임 안건이 상정될 계획이다. 만약 이들 안건이 모두 의결된다면 현재 종훈·종윤 형제 측이 5대 4 정도로 우위를 보이는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도가 5대 6으로 바뀌면서 3자 연합이 주도권을 잡게 된다.
9개월 동안 지루하게 이어온 집안싸움의 피해는 고스란히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 주주들에게 돌아간다. 분쟁 장기화로 이들 회사의 주가가 맥을 못 추고 있다. 최근 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제약·바이오 주가가 상승세가 이어가고 있지만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만 수혜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집안싸움으로 애꿎게 양측 회사 임직원들이 심적 부담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측의 비방전이 수위가 높아지면서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최고의 신약개발기업이 경영권 분쟁으로 국민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다행히 집안싸움 와중에도 큰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비용이 수반되는 투자를 할 경우 최대주주의 의사결정이 필수적이다. 미래성장 동력을 학보하기 위해서는 R&D 투자가 뒤따라야 하지만 지금과 같이 집안싸움이 지속된다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신약개발을 위한 R&D 투자’를 평생 실천해온 창업주의 신약개발 정신이 아쉬운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