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3급인 A씨는 장애인 특별공급 청약에 당첨돼 분양받은 아파트 잔금을 치르기 위해 지난 3월 시중은행 한 지점에 대출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대출 담당자는 A씨가 대출상품 이해나 의사능력이 부족한 점 등을 이유로 대출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A씨가 신청한 대출상품이 장애인의 주거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점, A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10년간 경제활동을 해 온 점을 들어 대출 거절은 합당하지 않다고 봤다.
장애인이 대출을 신청한 경우 사안에 따라 구체적·개별적으로 의사능력을 판단할 필요는 있겠으나, 장애인 주거 정책과 관련된 대출을 당사자인 장애인이 신청하러 갔을 때 장애 특성을 주된 이유로 은행이 거절했다면 정상적이라 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장애인이 대학을 나오고 짧지 않은 시간 경제활동까지 했다면 말이다.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지능지수(IQ) 50~70을 3급 지적장애로 구분하고 있다. 3급 지적장애인은 교육을 통한 사회적·직업적 재활이 가능한 사람으로 정의되는데, 지적장애인 중 약 80%가 이 급수에 해당한다. 장애인 관련 단체에 문의한 결과 국내 지적장애인의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 통칭)의 경우 적게는 30만명 많게는 100만명에 달할 것이라 한다. 은행들이 준비가 돼있지 않으면 A씨 같은 사례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장애인 등록증이 있는 발달장애인이 소득·자산 기준을 충족하면 영구·국민임대 주택 우선 공급 대상에 해당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은행들은 위 사례를 반복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지난해부터 고객 일부를 '금융 취약계층'으로 분류, 상품·서비스 문턱을 낮춰 '상생 금융'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진짜 금융 취약계층은 은행 영업점에 오는 것 조차 많은 사투를 벌여야 하는 장애인이 아닐까.
금융당국은 그간 뭘 했나. 2016년 12월 금융위원회가 작성한 '금융소비자보호 모범규준 개정안 주요 내용'에는 "장애인이 적합한 금융상품을 선택하고 차별 없이 금융상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제고해야 한다. 금융회사에 장애인이 정확한 상품 이해 및 적절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보호지침 마련 의무를 부여한다"고 명시돼 있다.
인권위는 이번 A씨 사례를 통해 지적장애인이 대출을 신청할 경우 의사능력 확인 시 은행은 알기 쉬운 단어와 표현을 사용할 것과, 금융위원장은 발달장애인 특성을 고려한 금융상품 안내서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한마디로 2016년 모범규준 개정 이래 당국과 은행 모두 8년간 손 놓고 있었다는 뜻이다. 당국과 은행이 할 일을 제대로 했다면 A씨는 대출 거절에 앞서 편의와 보호를 받았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