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비올 때 스타트업에 우산 줘 고맙지만...

등록 2024.08.06 10:21:15

 

"한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업이 스마트밴드를 개발했습니다. 신체 리듬과 밸런스를 정확하게 측정할 정도로 기술 면에서 뛰어났죠. 그러나 이 디바이스를 헬스케어 용도로 만들다 보니 시간을 알아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와 위치정보시스템(GPS) 기능이 없어 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외면했습니다. 접촉했던 모든 벤처캐피털(VC)은 투자를 거부했죠. 결국 이 회사 대표는 급여 체납이 수개월째 지속되자 직원들을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본업과 전혀 상관없는 정부 과제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읽은 책 '스타트업 성공 방정식'에 소개된 사례다. 이 기업이 적기에 투자를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니 질문을 바꿔, 창업가들이 투자 받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투자'는 '생존 1법칙'이다. 서울신용보증재단에 따르면 2023년 기준 1년차 전국 소상공인 생존율은 64.1%다. 5년차 생존율은 약 30%로 절반으로 준다.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보다 5년차 기업 생존율이 10%포인트 이상 낮다.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각국의 창업 5년차 생존율'을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41.7%인 반면 우리나라는 29.2%였다.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다.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가 역대 최대폭으로 늘어 100만명에 육박했던 지난해, 스타트업 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실제 작년 모태펀드 예산은 3135억원으로, 전년(5200억원)보다 약 40% 줄었다. 스타트업은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스타트업이라고 무조건 육성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 시장을 혁신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역할은 톡톡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스타트업이 어려울 때 우산을 주는 금융사들이 반갑다. 지난달 은행을 필두로 4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과 IBK기업은행은 모두 스타트업 지원에 나섰다. 금융사들은 자체적으로 혹은 정부와 함께 해마다 많게는 두 번씩 스타트업을 선발해 육성한다. 연례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지금처럼 스타트업이 투자 빙하기를 지나고 있을 때 은행들이 스타트업 지원에 나선 모습은 더욱 빛난다. 

 

다만 인공지능(AI), 핀테크, 프롭테크, 빅데이터, 페이먼트 등 '디지털' '금융' 이 두 단어와 연관이 깊은 스타트업에 지원이 쏠리는 점은 아쉽다. 금융사들은 은행·증권·카드 서비스에 접목할 수 있는 플랫폼·콘텐츠를 가진 스타트업을 선발하는데, 초기 기업의 실질적인 성장을 돕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금융그룹 눈에 띌 만큼 기술력과 잠재력을 가진 스타트업들은 이미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투자 지위를 가졌을 확률이 높다.

 

'스타트업 발굴 총 000곳' '누적 투자유치 000억원' '협업 수행 00건' 발표도 좋다. 다만 스타트업 단 1곳이라도 뚝심 있게 지켜보고 긴시간 제대로 키워내 금융사들이 자랑하는 사례 또한 듣고 싶다. '시간'은 '생존 2법칙'이다. 우산은 고맙지만,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스타트업에게 접근할 '용기' 역시 지닌 금융사들을 보고 싶다. 



권지현 기자 jhgwon1@fe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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