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대출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등에 따른 내수 경기 침체와 고금리 장기화로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렸다가 제때 갚지 못한 자영업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부채(빚) 부담이 한계에 달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부채의 질적 지표인 연체율이 급격히 높아지면 금융시장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 자영업자 연체율 증가는 부실화 위험도가 높은 부채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로 이후 금융 위기와 경제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수는 약 570만명 수준으로 전체 취업자 중 23.5%(2022년 기준)를 차지한다. 취업자 4명 중 1명이 자영업자인 셈이다. 한국의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미국(6%), 일본(9%), 독일(8%), 캐나다(7%) 등 주요 국가에 비해 훨씬 높다.
내수 침체가 오래가면서 자영자 대출 연체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에게 제출한 ‘개인사업자대출 세부 업권별 연체율’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2금융권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4.18%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인 지난해 말 기준 3.16%였던 것이 3개월 만에 1.02%포인트 뛰어올랐다. 2015년 2분기 4.25%를 기록한 이후 8년 9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같은 기간 은행권의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 역시 2015년 1분기 0.59%를 기록한 이후 최고 수준인 0.54%를 기록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분기 들어서도 은행권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지난 5월 말 기준 0.69%까지 치솟았다.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끌어다 쓴 다중 채무자의 연체율은 더 심각하다. 지난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다중채무자는 178만3000명으로 전년 동기(173만명) 대비 5만3000명 늘어났다. 전체 자영업자의 57%에 달한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4분기(57.3%) 이후 4년 3개월 만에 가장 큰 규모다. 같은 시기 전체 자영업자 대출액 규모는 752조8000만원에 달했는데 이 중 71.3%가 다중채무자의 몫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다중 채무자이면서 저소득인 취약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10.2%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이달 초 대출 만기 연장 등 금융 지원을 담은 25조원 규모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한은은 최근 '채무 재조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채무 상환 능력이 없는 자영업자의 빚 부담을 들어주자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등도 자영업자 대출 만기 연장을 비롯해 여러 방안을 추가로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자영업자들의 부채가 금융 부실로 전이될 가능성이 어느 때 보다 높다는 점이다. 이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부채가 금융 부실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실 채권 폭탄이 터져 금융시스템 전체를 뒤흔들지 모른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부채에 대해 "더 이상 공짜가 아니다"라면서 지금은 2010년대와 같은 저금리가 아니며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커졌다고 밝혔다. 고금리 시대에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경고다.
경제 위기는 금융 위기에서 시작되고, 금융 위기는 대부분 부실 대응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과거 사례를 통해 알고 있다. 경제적 요인에 의해 발생했던 경기 침체와 금융 위기의 경우 그 전조현상으로 연체율 증가가 있었다. 부채 위험 관리에 경각심을 높여, 대응해야 할 때라는 이야기다. 금융 위기는 대개 부실 대출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자영업자 연체율이 자칫 금융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새출발 기금' 등 채무 재조정 연착륙 프로그램을 정비해야 한다. 과포화 상태인 자영업 구조 개편도 서둘어야 한다. 금융사들은 충당금을 더 쌓는 등 자산건전성 관리에 나서야 한다. 자영업자에 대한 실효적인 지원책 마련에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미적대다 때를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금융이 불안정하면 그 다음에 닥칠 것은 경제 위기다.
정해균 편집국 경제부장